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방위 관세 공격에 전 세계 중앙은행들 고민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초래한 무역전쟁 탓에 물가 급등 위험이 불거지면서 지난해부터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하하던 유럽중앙은행(ECB) 내에서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ECB 통화정책위원인 로베르트 홀츠만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는 12일(현지시간) CNBC와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 위협을 들어 "인플레이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모델에 따르면 통상 마찰이 증가할 경우 성장이 줄어드는 게 사실이지만 반대로 인플레이션도 증가하기 때문에 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홀츠만 총재는 이어 "우리 일은 성장이 아닌 인플레이션에 대처하는 것"이라며 "경기부양을 위한 빅컷(정책금리 0.5%포인트 인하)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요아힘 나겔 분데스방크(독일 중앙은행) 총재는 이날 영국 런던의 한 강연에서 "현재의 불확실한 환경에서 성급하게 행동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자벨 슈나벨 ECB 이사도 전날 "무역 분야 불확실성이 극적으로 커졌다"며 "비싼 에너지 가격 등 구조적 위기를 금리 인하로 해결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앞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도 지난 10일 유럽의회 연설에서 "글로벌 무역 마찰이 커지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인플레이션 전망은 더 불확실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로존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ECB는 작년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정책금리를 다섯 차례 인하했다.
이와 관련해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여섯 번 금리를 인하한 캐나다 중앙은행과 멕시코 중앙은행의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도 관심이 모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12일부터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일괄적으로 부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날 발표된 미국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신중론에 힘을 실어줬다.
올 1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 상승해 지난해 6월(3%) 이후 7개월 만에 3%대를 기록했다.
이날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하원 청문회에서 이번 CPI 수치에 대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연준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날 상원 청문회에서 그는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2%)를 웃돌면 기준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파월 의장은 또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발언에 대한 의원 질의에 "국민은 연준이 계속해서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며 경제 상황에 근거해 결정을 내릴 것으로 확신해도 된다"고 답변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에 "금리는 인하돼야 한다"며 "이는 다가올 관세와 함께 진행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준의 통화정책에 관여하려는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 간 기싸움이 팽팽하게 펼쳐진 셈이다.
취임 첫날부터 물가 문제 해결을 장담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CPI 지표에 대해 조 바이든 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CPI가 발표된 후 트루스소셜을 통해 "바이든 인플레이션 상승(BIDEN INFLATION UP)"이라고 적었다.
인플레이션 지표가 연준 목표(2%) 수준 위에 머물면서 연준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 선물시장은 연준이 연내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하거나 한 차례만 인하할 확률을 69%로 반영했다.
하루 전의 57%보다 크게 오른 수치다.
올해 금리 인하가 한 차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에 베팅하는 셈이다.
지난해 9월 빅컷(정책금리 0.5%포인트 인하)을 시작으로 12월까지 총 3차례에 걸쳐 1%포인트 기준금리를 내렸던 연준은 올해 1월 첫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진 골드먼 세테라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치가 나왔다"며 "연준이 곧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고히 했다"고 분석했다.
벤 맥밀런 IDX인사이츠 CIO는 "시장의 금리 인하 전망이 제로(0)에 가까워지더라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예상 밖 물가 상승에 연준 인사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비둘기파로 분류되던 오스틴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올 1월 물가 지표에 대해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며 "이 같은 수준의 결과가 몇 달간 지속된다면 연준의 임무가 아직 완수되지 않았다는 점이 분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13일 발표된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오름세를 보였다.
이날 미국 노동부는 1월 PPI가 전년 동월 대비 3.5%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장 전망치(3.2%)를 상회하는 것으로, 미국 PPI는 작년 9월 1.9%를 기록한 뒤 4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0만건대 초반으로 유지되면서 고용시장이 견조하게 나타났다.
이날 미 노동부는 지난주(2월 2~8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21만3000건으로 전주(22만건) 대비 7000건 감소했다고 밝혔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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