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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가 육군에 납품한 수리온 의무후송전용헬기 [사진 = 한국항공우주산업(KAI)] |
방위산업이 ‘K방산’이라고 집중조명을 받은 것은 불과 최근 2~3년 동안의 일이다.
현장에서는 방위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아직도 업계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방위산업계를 지난 10년간 옭아매고 있는 말이 바로 ‘방산 비리’다.
하지만 실제로 방산 비리로 몰려 감사 대상이 되고 수사를 받았다가 법정에서 유죄 판결이 나온 사례는 많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권이 사정 정국을 이끌어 가는 수단으로 방산 비리 프레임을 활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창원의 국가산단에서 만난 한 방위산업체 관계자는 “국가 방위를 위한 일을 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텼지만 오히려 국가가 더 힘들게 했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대표적 사례로 우리나라의 첫 독자개발 모델 헬리콥터인 수리온의 결빙시험 관련 감사원 감사가 꼽힌다.
개발이 끝나 육군에서 운용 중이던 수리온에 대해 감사원은 2017년 감사를 벌였다.
감사를 통해 기체에 얼음이 끼었을 때 비행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지 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전력화(실전배치) 결정이 내려졌다고 감사원은 판단했다.
전력화 결정을 내린 당시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을 비롯한 공무원 3명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수사의뢰했다.
하지만 감사원이 지적한 체계결빙 성능시험은 헬리콥터가 운항 중 얼음이 끼게 된 상태로 비행시간 90시간을 채워야 하는 것이었다.
기온이 낮으면서도 습도가 높아야 얼음이 끼는데 한국에서 이런 날씨를 접하기 쉽지 않았다는 게 수리온을 개발하던 KAI(
한국항공우주산업)와 개발사업을 관리하던 정부(방위사업청)의 고민이었다.
결국 외국 사례를 참고하기로 했다.
미국 블랙호크 헬기(UH-60)는 전력화 후 4년 뒤에 체계결빙 시험을 추가로 진행했고, 아파치 헬기(AH-64)도 실전배치 8개월 후에 결빙시험을 마쳤다.
감사원 감사 결과가 공개되자 논란이 이어졌고, 4개월 뒤 정부는 국방부 장관 주재 회의를 열고 체계결빙 시험을 하지 않았지만 수리온 실전배치를 다시 하기로 결정했다.
감사원 수사의뢰도 흐지부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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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이 선보인 ‘장보고Ⅲ 배치Ⅰ’ [사진 = 연합뉴스] |
한국 잠수함 중 가장 큰 장보고Ⅲ(3000t 급) 선도함으로 2021년 8월 취역한 도산안창호함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납기지연 벌금(지체상금)을 984억원 부과했다.
잠수함 장비인 어뢰 기만기가 납기를 110일 어겼다는 것을 이유로 잠수함 전체 가격의 10%를 체계종합업체(당시 대우조선해양)가 책임지도록 한 것이다.
어뢰 기만기를 납품하기로 한 협력업체가 국내 개발에 나섰다가 일정이 늦어졌는데도 체계종합업체가 지체상금을 납부했다.
결국
한화오션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뒤 2023년 11월 소송을 제기했다.
한화오션 측은 “도전적인 개발을 해야 하는 사업에 과다한 지체상금을 부과하면 방위산업이 어려운 프로젝트 시도에 나서기를 꺼리게 될 것”이라며 “가혹한 시험 조건이나 도전적 개발 사업은 지체상금을 면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고 주장했다.
납기를 지키도록 만든 규제가 오히려 국산개발을 저해하는 것이다.
한 방위산업 전문가는 “모든 제도가 비리 예방에만 초점이 맞춰 있었다”면서 “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운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냐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창원 안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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