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국가산단
SNT다이내믹스 공장 가보니
320시간 연속 운용 규정 놓고
13시간 모자란다고 퇴짜 맞아
규정 고치면 감사·조사 받을라
과도한 평가기준에 손 못대
변속기 성능 인정한 튀르키예
한국 정부보다 앞서 공급계약
정부 뒤늦게 방위사업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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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도 SNT 다이내믹스 기술연구소장 [창원 = 안두원 기자] |
최근 방문한 경남 창원 국가산업단지 내
SNT다이내믹스 공장. 1976년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이지만, K2전차에 탑재하는 국산 파워팩(엔진+변속기)의 산실이다.
사실 K2전차 파워팩은 한때 ‘국산화 실패’의 상징으로 세간에 알려진 적이 있다.
2005년 시작한 K2전차 개발은 변속기만 빼고 한참 전에 성공한 상태여서다.
이 때문에 ‘개발만 20년째’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드디어 지난 3일
SNT다이내믹스는 정부(방위사업청)를 상대로 변속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K2전차 탑재용으로
현대로템에 보내면 파워팩으로 조립된다.
SNT다이내믹스 관계자는 “국산 변속기가 결국 K2전차에 들어간다니 힘겨웠던 지난 시간들이 떠오르며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현대로템 관계자도 “국산 변속기를 적용한 K2전차를 일정에 맞게 생산해 군에 납품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창원 국가산단에 위치한
현대로템 방산공장. 약 200m 길이의 생산라인 시작점에서 출발해 끝쪽으로 갈수록 K2 전차의 차체와 포탑이 형체를 완성해가고 있었다.
모든 차체의 측면는 폴란드 국기 문양이 붙어있었다.
남기철
현대로템 방산시스템 기술1팀장은 “폴란드에서 진행된 훈련에서 기동성과 포탄 자동 장전, 디지털 사격통제장치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면서 “영하 32도의 혹한에서도 시동이 문제없이 걸렸다”고 말했다.
K2 전차는 폴란드 수출 2차 계약(70억달러 규모)을 앞두고 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2022년부터 이듬해까지 차체 제작라인과 포탑제작 라인을 2배 증설했다”면서 “증설에 맞춰 인력도 1.5배가량 더 채용했다”고 말했다.
현대로템 측은 수년간 초과근무를 해야지만 납기를 맞출 수 있다고 귀띔했다.
공장 부지내에 성능검사 시설에서는 등판 시험이 진행 중이었다.
짙은 녹색으로 기본 도장을 한 50t 넘는 K2 전차가 가파른 오르막 길 중간에 수초간 멈춰있다가 단숨에 언덕 정상까지 올라갔다.
1500마력 파워팩의 성능이 한눈에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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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템 창원 방산공장에서 K2전차가 등판시험을 하고 있는 모습. [현대로템] |
전차 변속기는 초정밀 기계다.
김종도
SNT다이내믹스 기술연구소장은 “K2전차용 변속기는 내부가 부속품 8000여 개로 가득 차 있는 무게만 2.5t짜리 정밀 기계”라며 “1500마력짜리 엔진으로 달리는 전차의 전진, 후진, 방향 전환 같은 구동과 제어를 평지, 경사로, 험지에 구애받지 않고 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차는 구동체계가 고장 나 멈추면 장병의 안전이 큰 위험에 놓이기 때문에 1500마력이라는 고출력 상태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내구성이 필수다.
전차 강국 독일도 내구성을 갖춘 1500마력 변속기 개발에 10년이 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소장은 “군의 요구 수준인 1500마력보다 더 높은 1700마력까지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사연도 많다.
K2전차용 변속기가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실패를 거듭하던 2022년에 튀르키예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튀르키예가 개발하던 전차용으로
SNT다이내믹스의 변속기를 고려한다는 내용이었다.
자신들의 시험평가 기준을 통과하면 쓰겠다고 했는데, 2023년 1월에
SNT다이내믹스와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에서 시험평가를 못 통과하던 파워팩 변속기가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은 셈이다.
성능을 한국 정부가 튀르키예보다 늦게 인정한 것은 내구성 시험평가 기준이었던 ‘320시간 연속 운용’에 얽매인 탓이었다.
개발 중이던 국산 변속기가 시험평가에서 성공한 시간은 기준보다 4% 모자란 307시간이었다.
튀르키예가 한국산 변속기 성능을 인정했지만 정작 한국에선 320시간이 족쇄로 작용한 셈이다.
무기개발 담당 공무원 입장에선 중간에 규정을 바꿔 재량권을 행사하면 즉시 감사와 조사 대상이 됐다.
당초 K2전차의 2차 양산을 시작한 2015년에는 국산 변속기를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320시간 규정에 가로막혀 일정이 하염없이 지연됐다.
뒤엉킨 실타래 같았던 변속기 시험평가는 튀르키예에서 성능을 인정받은 이후 풀리기 시작했다.
전향적으로 변속기 개발 과정을 돌이켜보자는 움직임이 정부 내에서 생겨났고 결국 ‘우선 국산 변속기를 고려한다’는 결정이 방위사업추진위원회(23년 5월)에서 내려졌다.
이와 함께 다양한 무기개발 과정에서 문제로 지적된 ‘시험평가규정 경직성’도 완화됐다.
정부는 지난해 5월 방위사업법을 개정해 ‘고도의 기술 수준을 요구하는 연구개발 계약으로서 성실하게 이행해도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46조의5 제2항)에는 계약 변경이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등 외부의 비판을 수용했다.
결국 지난해 10월 28일 열린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직권으로 K2전차 파워팩에 국산 변속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튀르키예가 동일한 변속기의 허가를 내준 지 3년이 넘게 지난 뒤였다.
■ 용어설명 : 파워팩
▷엔진과 변속기를 결합해 모듈(패키지 구성)로 만든 구동체계. 전투 현장에서 고장이 나더라도 교체를 쉽게 하기 위해 모듈로 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투용 차량 대부분은 파워팩을 구동체계로 사용 중이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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