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AI가 절대 못 따라해”…쇳물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이 달인

2차전지 ‘에코프로’ 1호 명인 배문순 씨
한보철강 용접공이었던 20대 청년
설비문제·라인최적화 전문가 돼
공장 가동 오류 95%까지 줄이기도
“AI시대에도 기술인재 미래 밝아”

대기업 명장제도, 중견기업으로 확산
현장 우수인재에 전권주고 임원 대우

배문순 에코프로비엠 설비기술팀 직장이 공장 현장에서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에코프로

포스코·삼성전자·LG화학 등 대기업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명장(名匠)’ 우대가 중견기업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이차전지 기업 에코프로그룹은 최근 에코프로비엠 설비기술팀 소속 배문순 직장(53)을 ‘명인’으로 선정했다.

올해부터 도입한 전문가 제도의 일환으로 현장에서 우수 인재를 선발해 3년간 준임원으로 대우한다.

업무 전반에서 해결사로 활약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급여도 맞춰준다.


9일 배문순 명인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용접할 때는 쇳물이 흘러내리는 걸 보면서 조정을 해야 하는데 이는 대체될 수 없는 사람만의 노하우”라며 “인공지능(AI), 로봇 시대에도 기술 인재의 입지는 굳건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장에서 발견되는 문제를 끈질기게 파고들고 토론하며 해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제2, 제3의 명인 후배들을 길러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비슷한 기업들 사이에서 명장 제도를 운용하는 곳은 현재 에코프로가 사실상 유일하다.

‘노하우가 있고 열심히 하는 직원들을 대기업 부럽지 않게 대우해줘야 한다’는 이동채 에코프로 창업주 뜻에 따라서다.

이동채 창업주는 지난달 임명식에도 참석해 직접 배 명인을 격려했다.


배 명인은 그간 설비 문제 해결, 예방 정비, 라인 최적화 등의 업무를 수행해왔다.

활약상은 사내에선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2021년 에코프로 포항캠퍼스에 파견돼 양극재 소성 공정 생산성 향상을 이뤄낸 게 대표적이다.

그는 90%에 머물렀던 수율을 한 달 만에 97~98%로 끌어올렸다.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공장에서 계속 머물며 관찰한 뒤, 밤낮 가리지 않고 매일 회의하며 현장에서 살다시피 했던 덕분이다.

배 명인은 “퇴근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며 “꿈까지 꿀 정도였다”고 했다.


2017년 에코프로비엠 오창 CAM4 공장 일화도 유명하다.

설비를 새로 들여온 탓에 가동 초기 오류 보고가 하루에 1000건 가까이 발생했는데 그가 공정을 개선한 후 오류가 50건 안팎으로 95% 가까이 줄였다.

토론에서 나온 부하 직원의 아이디어를 적극 발전시켜 반전 공정을 개선한 게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배 명인은 “아무리 전문가라도 혼자서는 개선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여러 유관부서를 인터뷰하고 수없이 회의를 한다”며 “실력만큼이나 동료들과의 열린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배 명인은 현장 근무 경력만 30년이 넘는다.

20대 초반 한보철강 당진공장 건설 현장에서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20년 가까이 용접 일을 했다.

의료기기 회사에서도 근무하며 수술실 가구, 로봇, 실험실 장비 등 용접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제작했다.

에코프로에는 2015년 경력으로 입사했다.

배 명인은 “공장에 컨베이어 벨트와 소성로가 있는데 모두 이전 용접공 생활을 하면서 만들어본 것들”이라며 “용접 경험이 현재 일하는 데 있어서 소중한 자산”이라고 했다.


생성형 AI가 급속도로 발전하며 지식노동을 위협하면서 화이트칼라보다 블루칼라 일자리가 각광받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블루칼라 대박(blue-collar bonanza)’이라고까지 했다.

배 명인도 AI, 로봇 시대에는 기술 인재의 전도가 유망할 것으로 본다.

“앞으로도 누군가는 항상 우리 일을 해야 할 겁니다.

누군가는 로봇을 만들어야 하고, 다른 누군가는 로봇을 고쳐야 하고 또 로봇 성능을 개선하는 데도 사람이 필요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제가 속한 설비기술팀은 아직도 할 일이 한참 남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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