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회계 및 지속가능성 연구자와 기준 제정자가 모인 호주 시드니 학회 참석 중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접했다.

자연스럽게 2기 트럼프 정부가 가져올 변화, 특히 글로벌 탄소배출 공시에 대한 영향이 식사 자리의 화두였다.


상당수가 기후 암흑 시대를 걱정했다.

미국이 파리협정을 탈퇴한다.

석유·가스 추출이 증가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폐지된다.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기관의 ESG 투자가 위축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 위험 공시 규정이 폐지된다.

26개 공화당 주가 반발하는 노동부의 연금기금 ESG 고려 허용 규정이 사라진다.


우려가 지나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았다.

일등공신 일론 머스크는 기후과학 신봉자다.

2017년 파리협정 탈퇴에 반발해 백악관 위원회를 뛰쳐나온 바 있다.

청정에너지 투자는 트럼프 1기에서도 늘었다.

트럼프 사위도 투자한 IRA 프로젝트 상당수는 공화당 주에 있다.

이미 18명의 공화당 의원이 폐지에 반대한다.


지난달 미국 임원 대상 PwC 설문조사에 따르면 60%가 기후변화를 위험으로 인식한다.

트럼프(해리스) 당선 시 11%(4%)만 지속가능성 투자를 줄이고 46%(55%)는 투자를 늘린다.

정치적 소란을 피해 ESG 활동을 감추는 그린허싱(Greenhushing)이 유행할 수 있다.

ESG 펀드 단속을 피해 지속가능성 속성을 숨기는 그린블리칭(Green-bleaching)이 기관투자자에 확산될 수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은 이제 기업 운영 및 기업가치 분석의 상수다.

공화당의 반발은 오히려 ESG 투자의 재무적 책임을 강화했다.


연방 차원의 기후 공시는 멈췄다.

그러나 2025회계연도부터 스코프 1-2-3 배출량 공시를 의무화하는 캘리포니아의 기후기업데이터책임법과 유럽연합(EU)의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은 여전히 유효하다.

상당수는 트럼프 정부의 기후 공시 철회가 역설적으로 국제 지속가능성 기준의 확산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전망을 했다.

과거 미국회계기준과 국제회계기준이 통합되지 못한 이유는 미국이 우수한 자체 기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후 공시의 경우 미 연방 수준의 규제 공백이 발생하면 많은 글로벌 미국 기업의 선택은 글로벌 최저 기준인 IFRS S1, S2가 될 것이다.


트럼프 2기 정부는 ESG의 정치화를 심화시키고 미국의 기후 약속을 축소할 것이다.

그러나 탈탄소화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다.

오히려 이 시기는 ESG라는 정치화된 라벨을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성 경영에 집중할 기회다.

기후 위기는 정치적 입장과 무관한 실재하는 위험이며, 기후 대응은 기업의 장기적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에너지가 안보 문제이자 기후 리스크 문제인 소규모 개방경제다.

미국·중국처럼 기후 악당이 될 수 없다.

물리적 위험과 전환 위험에 대비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투자는 신뢰할 수 있는 비교 가능한 정보를 필요로 하며, 이는 검증된 법적 의무공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지속가능성 공시 도입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일본이 내년 3월 기준을 발표하니 그때 입장을 정하자는 주장도 있다.

일본 친구에게 트럼프 당선으로 뭐가 바뀌는지 물었다.

트럼프 2기를 예상했고 그래서 변할 게 없다는 무심한 대답을 들었다.

지속가능성 공시 도입과 관련한 정책적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우리 기업들의 부담 및 피로가 가중되고 있다.

준비 시간 부족과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경쟁력 약화도 우려된다.

기업 부담을 완화하는 확실한 조치를 동반한 명확한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이 조속히 제시되어야 할 시점이다.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장·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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