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원자력 발전소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주변에서 군사활동이 계속되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원전 안전 위험을 경고하고 나섰다.
17일(현지시간)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자포리자 원전 인근에서 발생한 무인기(드론) 공격 소식이 전해진 뒤 성명을 통해 "자포리자 원전이 직면한 핵 안전 위험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자포리자 원전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러시아군에 의해 점령된 뒤 시설 운영은 우크라이나 인력이 맡지만, 러시아가 사실상 원전 통제권을 쥐고 있다.
그간 원전과 주변 기간 시설들이 양측 공습에 여러 차례 노출됐는데, 최근 들어 군사활동이 원전에 심각한 피해를 줄 우려가 커지자 IAEA가 직접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원전 2개 냉각탑 중 1개가 화재로 손상된 데 이어 17일에는 원전과 연결된 유일한 750㎸ 고압 전력선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있는 도로가 파괴됐다.
IAEA 조사에 따르면 이날 폭탄을 탑재한 드론이 원전 보호구역 바로 바깥쪽에서 폭발했지만 별다른 사상자나 발전 설비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피해 현장을 찾은 IAEA 조사팀은 여전히 원전 근처에서 잦은 폭발과 함께 총성과 포성이 반복해서 들리는 등 군사적 활동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냉각탑 화재 당시 각각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과 러시아의 방화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등 상대편에 책임을 전가했다.
이날 드론 공격에 관해 우크라이나는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 원전 도로가 파손됐다고 지적했다.
원전 안전을 둘러싼 양측 신경전은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기습 공격을 가한 러시아 본토
서남부 쿠르스크에 위치한 원전으로도 옮겨갔다.
러시아는 지난 6일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로 진격하며 점령지를 확대해 나가자 8일에도 우크라이나군의 공습으로 쿠르스크 원전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날 스푸트니크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원전 타격 계획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뒤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원전 공격에 나선다면 즉시 강경하게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가 자국 원전을 스스로 파괴한 것처럼 공습 현장을 위장하는 전술을 구상 중이라는 게 러시아 국방부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헤오르히 티크히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우리가 원전 공격 계획을 세웠다는 러시아의 주장은 제정신이 아닌 선동"이라며 "우크라이나는 이 같은 허위 주장을 공식 부인한다"고 일축했다.
한편 우크라이나군은 18일 쿠르스크 지역에서 교량 1개를 추가로 공격하는 등 진격을 지속했고 러시아 맹방인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은 국경 병력을 증강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날 로시야 방송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벨라루스 국경에 병력을 12만명 이상 배치했다"면서 "벨라루스는 국경에 군 병력의 거의 3분의 1을 주둔시키며 대응했다"고 말했다.
다만 국경에 배치한 병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안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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