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세기의 미남 배우로 스타덤에 올라 1960~1970년대 여심을 흔들었던 프랑스 영화배우 알랭 들롱이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8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들롱의 자녀들은 성명을 통해 들롱이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100㎞ 떨어진 '두시'에 위치한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밝혔다.

들롱은 2019년 6월 뇌졸중을 앓은 뒤로 스위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가 몇 년간 계속 악화돼왔다.


영화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답게 들롱은 숱한 명작을 남겼다.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에서 신분 상승 욕망에 사로잡힌 가난한 청년 역을 맡아 일약 스타덤에 오른 뒤 그 다음해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로코와 형제들'에서 뛰어난 연기력으로 평론가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조지프 로지 등 유명 감독과 함께 일하며 8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들롱은 특유의 매혹적 눈빛과 다부진 몸매가 어우러진 조각 같은 외모로 한국에서도 미남 배우의 대명사로 통했다.

국내에선 1960년 영화 '태양은 가득히'가 단성사에서 개봉해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1980년대까지도 국내 연예계에선 잘생긴 남자를 지칭할 때 '한국의 알랭 들롱'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였다.



알랭 들롱을 세계적 배우 반열에 올린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한 장면.

들롱은 부모의 이혼과 입양 같은 불우했던 유년기를 거쳐 화려한 여성 편력에다 범죄 사건에 연루되는 등 파란만장한 개인사를 보냈다.

1935년 11월 부유한 교외 지역에서 약국 보조원 출신 아버지와 영화관 안내원으로 일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들롱은 1939년 4세 때 부모가 이혼하며 각각 재혼하는 바람에 다른 가정에 입양됐다.

그는 이후 양아버지의 사망으로 원래 재혼한 어머니에게 돌려보내졌지만 기숙학교에서 행실 불량으로 6번이나 퇴학 처분을 받고 계부의 정육점에서 일하게 된다.

계부와 갈등을 빚고 정육점 일에도 적응하지 못하던 들롱은 17세에 프랑스 해군에 입대했지만, 복무 중 절도를 저지르다 발각된 끝에 1954년 1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베트남 사이공으로 파병된다.

파병 기간 중 부대 차량을 훔쳐 군 교도소에 수감된 뒤 1956년 불명예 제대 후 프랑스로 귀국했다.

이후 가족과 연락을 끊은 채 파리에서 웨이터, 짐꾼 등 온갖 잡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들롱은 1957년 칸 영화제에서 미국 프로듀서 데이비드 셀즈닉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은 일을 계기로 영화계에 입문해 1957년 이브 알레그레 감독의 영화 '여자가 다가올 때'로 데뷔했다.


연기자로서 들롱은 '프렌치 느와르'의 전성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데 중절모와 트렌치코트를 입고 범죄자와 같은 '하류인생' 역할을 주로 연기했다.

미남이면서 퇴폐적인 특유의 매력은 그의 굴곡진 개인사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분석도 있다.


들롱은 2018년 뇌졸중 수술 이후 림프종이 악화되자 안락사 결정을 발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안갑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