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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폰에서 폴더블폰까지…`창조 DNA`는 현재진행형
기사입력 2020-10-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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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회장 타계 / 新경영에서 초격차까지③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6년 9월 19일 미국 뉴욕에서 삼성전자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고 맨해튼 삼성체험관을 방문해 휴대폰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 = 삼성전자]

"모방 속에는 성공의 길이 없다.

삼성의 미래는 창조경영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007년 신년사에서 "독창적인 제품과 사업 개발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성장엔진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속한 의사 결정과 과감한 선제 투자 등 스피드를 앞세운 '패스트 폴로어' 전략이 한계에 다다른 만큼 새로운 시장을 스스로 만드는 '퍼스트 무버'이자 '개척자'로 변신이 필요하며, 창조경영은 이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게 이 회장의 확신이었다.

삼성이 오늘날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창조 DNA'가 바탕이 됐다는 게 재계와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삼성은 이 회장의 창조경영 선언 이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창조적 혁신을 통해 경영 성과는 물론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인 사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스피커를 하단으로 내리고 TV 모서리를 곡선으로 처리하는 등 디자인 혁신으로 난공불락으로만 여겨졌던 글로벌 TV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삼성전자의 보르도 TV와 육상이 아니라 바다에서 배를 건조하는 삼성중공업의 플로팅독 공법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창조 DNA는 이 회장의 창조경영 선언 이전부터 면면히 이어져 왔다.

오늘날 삼성을 있게 한 1등 공신인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1987년 4메가 D램 개발 경쟁이 붙었을 당시 개발진이 메모리 반도체 개발 방식을 회로를 고층으로 쌓아 올리는 스택(stack)으로 할지, 당시 주류 기술로 밑으로 파 내려가는 공법인 트렌치(trench)로 할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이 회장은 "단순하게 생각합시다.

지하로 파는 것보다 위로 쌓는 게 쉽지 않겠습니까"라며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스택 방식을 과감하게 채택해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퀀텀 점프에 성공한 것이다.


반도체에 이어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으로 부상한 휴대폰 역시 그런 사례다.

1993년 이 회장은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합니다"라며 삼성의 신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점찍고, 불과 2년여 만에 당시 휴대폰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모토롤라를 꺾고 국내 점유율 1위에 오른다.


이 같은 휴대폰의 약진에는 이 회장의 역발상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시절 휴대폰의 통화(SEND)와 종료(END) 버튼은 일괄적으로 숫자키 아래에 있었는데, 이 회장은 이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가장 많이 쓰는 키가 통화와 종료 키인데, 이게 아래쪽에 있으면 한 손으로 전화를 받거나 끊기가 불편하다.

두 키를 위로 올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이 회장의 아이디어는 제품에 반영돼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의 첫 번째 텐밀리언셀러(1000만대) 휴대폰 탄생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건희폰'이라는 별명으로 2002년 출시된 첫번째 컬러 LCD폰 'SGH-T100'이 그 주인공이다.

이 회장은 제품 개발 단계부터 꼼꼼히 디자인을 살폈고, 조가비 모양의 잡기 쉽게 넓으면서도 가볍고 얇은 디자인을 제안했다.

출시와 함께 화제를 모은 SGH-T100은 출시 2년이 되기 전에 글로벌 판매량 1000만대를 기록하며 '애니콜 신화'의 신호탄을 쐈다.


애니콜 뒤에는 '최초'라는 수식어도 뒤따랐다.

삼성전자는 1999년 손목시계형 휴대폰인 일명 '워치폰'을, 1999년 8월에는 최초로 휴대폰과 MP3플레이어 기능을 통합한 MP3폰을 출시했다.

이후 세계 최초의 TV폰, 2000년에는 디지털 카메라 기능을 탑재한 '카메라폰'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회장은 2000년대 후반 RFID(전자태그)와 무선인터넷, 휴대폰 기술을 접목한 신개념 냉장고 개발을 지시하기도 했다.

냉장고 내부에 설치된 RFID리더(안테나)가 내용물(음식물)에 부착된 RFID칩에 담긴 제품 정보를 읽은 뒤 무선인터넷을 통해 사용자 휴대폰으로 '유통기한이 지났으니 주의하라' 등의 메시지를 보내준다는 게 제품 콘셉트였다.

RFID 냉장고는 비록 상용화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통념에서 벗어난 이 회장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잘 보여준다.


이 같은 창조 DNA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이어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LED TV 출시 등 가전제품 혁신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게 삼성 관계자들 전언이다.

김현석 삼성전자 CE부문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7월 간담회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2007년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에 들러 타사 전시 제품들을 둘러보더니 'LED 제품이 앞으로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며 "이 발언을 계기로 삼성전자는 2009년 첫 LED TV를 출시했고, 그 뒤로 모든 LCD TV가 LED TV로 바뀌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은 TV 리모컨의 혁신을 이끌기도 했다.

2012년 당시 TV 리모컨에는 버튼이 50~80개 있었는데, 이 부회장이 "버튼을 10개 이내로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것이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음성인식 리모컨의 시발점이 됐다.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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