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사건 당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분석은 테라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가치가 ‘0’에 수렴했다는 것이다.
테라 기반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테라는 일종의 기축통화였다.
하지만 법정화폐와 달리 최소한의 쓸모가 없었다.
법정화폐도 가치는 변동한다.
정부가 불안정하면 가치는 폭락한다.
하지만 법정화폐는 세금을 내기 위한 수단으로 최소한의 존재 이유가 있다.
테라는 그러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스테이블코인의 확장세가 매섭다.
국내 스테이블코인의 거래 규모도 매우 커졌다.
지난해 12월엔 하루 거래 대금 1조222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대부분은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기 위한 수요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주도의 규제 완화로 실생활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스테이블코인 기반 카드로 일상적인 거래가 가능하다.
무서운 상상을 하나 해본다.
우리 결제 체계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뤄진다면 어떻게 될까.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사실상 달러다.
생활 전반에서 원화와 같은 수준의 활용도로 달러를 쓸 수 있게 된다면 굳이 안 쓸 이유가 있을까.
기업은 또 어떤가. 수출 주도의 경제 체제를 가진 한국은 기업들이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인다.
기업들은 세금을 내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달러로 원화를 산다.
한데 직원들이 달러로 생활하게 된다면 굳이 슬리피지를 감수하면서 원화를 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결제의 특이점을 지난다면 시장 참여자들은 당연한 선택을 할 것이다.
쓸모없어진 자산을 최대한 빨리 털어내는 게 손해를 줄이는 방법이다.
원화의 투매다.
시간은 빠르다.
8년 전 정부는 비트코인이 사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 블록체인은 금융과 이미 깊이 연결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아직 금융시장 영향력이 미미하다.
하지만 8년 뒤에도 그럴까. 누구도 미래는 알 수 없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비해야 한다.
블록체인 세상에서 원화의 쓸모를 만들 방안을 고민할 때다.
[최근도 증권부 recentdo@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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