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지구촌에 던져진 화두는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이다. 에너지 안보는 에너지 공급과 이용에 관한 안전성을 보장하고, 에너지 수급과 사용에 따른 위험을 관리하는 것으로 경제적 안정과 국가 안보, 환경 등 여러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탄소중립 정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고, 우리나라도 화석연료를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개편하는 등 에너지원을 다각화함으로써 탄소중립 및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의 침공과 그에 따른 국제사회 제재는 엄청난 연료비 상승을 유발하며 에너지 위기를 촉발했다. 이로 인해 탄소중립 로드맵에 차질이 빚어지고 전통적 에너지원과 녹색 에너지원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개전 이후 러시아는 5천발 이상의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해 발전기와 변압기, 연료저장소 등 에너지 시설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반의 절반 이상이 파괴됨으로써 전기는 물론 난방 및 물 급수가 제한되고 GDP가 38%나 추락하는 등 경제적 피해를 넘어 주민들의 기본적인 삶조차 무너지게 되었다.

현대전에서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집중 공격은 원거리 정밀타격이 가능해진 걸프전 이후부터 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전시 초기에 적의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유사시 한반도에서는 1천여 발이 넘는 미사일과 휴전선 인근의 장사정포가 불을 뿜을 것이다. 서로 공방을 하더라도 에너지 시설이 복잡하고 대규모로 구축된 한국의 타격이 훨씬 심할 것이다. 특히 우리는 전력(電力)을 직접 지원해줄 주변국이 없기 때문에 에너지망이 불완전한 일종의 ‘섬’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중국·러시아에서 지원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반면에, 우크라이나는 전쟁이전에 러시아와 이어진 전력망을 미리 차단하고 유럽국가들과 연결함으로써 필수적인 전력 수요는 충족할 수 있었다.

현재 우리 군은 장비 및 시설이 복잡해지고 첨단화되면서 에너지 소모가 급증하고 있어 에너지 효율화 문제를 고민하고 있고, 전시에는 평소와 같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제한되기 때문에 에너지 자립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군의 준비상태는 매우 미흡하다. 국방에너지 정책이 명확하지 않다보니 각 군별로 추진하는 내용들이 에너지 자립을 위한 노력보다는 탄소중립의 정부시책을 이행하는 명분과 실적 위주로 이뤄지면서 낭비요소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국방부 통제하에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에너지 정책 수립이 절실하며, 이는 다른 부처와의 협업이나 효율적인 예산 집행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이와 함께 전투준비태세 측면에서도 문제점을 살펴봐야 한다. 우리 군은 여전히 단기전을 대비해 핵심시설 및 장비들에 대한 예비전력으로 ‘디젤 발전기’를 운용하고 있다. 이는 세계 2차대전 때부터 쓰던 예비전력 개념에서 탈피하지 못한 일차원적 처방에 불과하다. 실제로 야전에서는 발전기 소음으로 인한 위치노출과 작전수행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결국 에너지 자립을 위해서는 군이 생산과 소비를 추구하는 프로슈머(생산자+소비자) 역할로 탈바꿈해야 한다. 또한 에너지 시스템을 화석 에너지에서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국방부 차원에서 국방 에너지 정책을 바로 세워야 한다. 에너지 자립을 위한 정책과 구체적인 로드맵이 설정되어야 하고 탄소중립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 계획도 제시돼야 한다. 다행히 최근 발간된 국방전략서에 이런 개념이 포함됐는데,이를 토대로 군수관리관실에서 미래 국방환경에 적합하고 군이 자립할 수 있는 국방 에너지 정책을 만들어 각 군이 특성에 맞게 체계적인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둘째, 군 에너지 자립과 탄소중립을 위한 실천 방안으로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MG)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기존 전력망에 IT 기술을 접목해 공급자와 소비자가 실시간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소규모 지능형 전력망을 뜻한다. 마이크로그리드는 신재생 에너지원 활용과 AI 기반의 에너지 효율화, 자체 전력공급망을 통해 통합적으로 에너지를 관리하는 차세대 전력시스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마이크로그리드는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온실가스 발생량을 감소시키고 효율적인 에너지 관리를 통해 사용량을 줄여 군의 에너지 정책에 기여할 수 있다. 더불어 자체 소규모 발전시설 구축을 통해 정전이 발생해도 원활한 전력공급이 가능해 군의 에너지 자립을 위한 시스템으로 적합하다.

현재 국내에서는 육지에서 떨어져 자급자족이 필요한 섬 지역과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산업단지 및 대학교를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고, 해외에서도 다수의 국가가 분산에너지원의 활성화를 통한 에너지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적극 적용하고 있다. 특히 미군의 경우 에너지 자립과 에너지 절감을 위해 2035년까지 130여개의 미국 본토 및 해외 주둔 기지에 마이크로그리드 시설을 구축할 계획을 갖고 추진하고 있다.

군의 마이크로그리드는 임무수행의 특성을 고려하여 고정형과 이동형으로 이원화해서 도입해야 한다. 먼저, 고정형은 전·평시 동일 공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를 대상으로 구축해 외부 공급이 제한되는 상황에서도 작전 수행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하고, 운용되는 발전설비는 탄소중립에 적합한 친환경 소형원자로(SMR) 또는 수소연료전지 설비로 구축해야 한다. 이동형은 전·평시 다양한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를 대상으로 ESS(에너지 저장 시스템) 및 전기차 같은 전원공급장치로 소음없이 전투원 가까이에서 전력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구축되면 지금과 같이 외부에 전력을 의존하는 군이 에너지 조달의 취약성을 극복하고 에너지 자립을 달성함으로써 전·평시 원활한 전투력 발휘가 가능해질 것이다.

끝으로 성공적인 에너지 정책 수립과 마이크로그리드 도입을 위해서는 국방혁신 4.0에 에너지 자립과 전환 과제를 부각시켜 국방에너지 정책과 실천 로드맵이 조기에 수립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MG 실증사업을 관련기관(산업자원부, 한국전력 등)과 공동 수행하여 효과를 확인하고 군의 마이크로그리드 모델을 표준화함으로써 육·해·공 전 군으로 확대하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내 마이크로그리드 산업 생태계가 활성화되고 수출로도 이어진다면 K-방산에 이어 K-에너지를 미래 먹거리로 발전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에너지공대 軍 에너지 전환 연구센터장 이동석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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