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거칠 것 없을 것 같았던 '탄소중립'에 첫 번째 제동이 걸렸다.

도처에 에너지 공급상 심각한 장애가 생겼다.

천덕꾸러기가 돼야 할 석탄, 석유, 가스 가격이 폭등하고, 석탄 발전이 오히려 늘어나는 모순까지 나타났다.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기대한 것에 비해 제 역할을 못해주기 때문이다.

유럽의 바람이 약해지니 영국과 스페인 등에서 전기요금이 5배 이상 뛰는 쇼크가 발생했다.

중국도 재생에너지로는 한계가 있으니 석탄 발전을 가동해야 되는데, 석탄 공급이 막혀버렸다.

아마 이런 애로 사항은 개도국으로 번져 나갈 것이고 한국도 안전지대는 아닐 것이다.

화석연료의 보복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탈원전·탈석탄 정책 기조하에서 2030년 40% 탄소 감축이라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감축 계획을 들여다보면 정교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전문가 의견이 많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에너지 대란도 피해나가는 치밀함을 놓쳐서는 안 되는데, 몇 가지 오류가 보인다.


첫째는 '단순화의 오류'다.

'재생에너지는 경제성이 부족하더라도 세계가 가는 길이니 무리해서라도 이뤄내야 한다'는 단순화다.

우리 현실을 감안한 균형 잡힌 에너지 조합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밀려나 있다.

반면 '원전이면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단순화도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사장도 주장한 '신한울 3·4호기'까지는 공사 재개의 설득력이 있지만, 원전 지상주의가 다시 나오면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외눈박이 시각으로는 복잡한 에너지 문제를 풀 수 없다.


둘째는 '시제 혼용'이다.

정부도 그렇고 전문가라는 이들의 주장에도 시제에 대한 불명확이 의도적인지 착오인지 존재한다.

미래완료형인 사안을 마치 현재진행형처럼 쉽게 이야기한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수급 안정을 위해서는 그린수소, 탄소 포집·저장, 중소형 원자로(SMR) 등이 가교 역할을 해줄 퍼즐 조각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제대로 실용화되려면 대체로 10년쯤 걸릴 텐데 당장 꺼내 쓸 수 있는 최종 병기처럼 시제를 혼용한다.

경제와 사회의 디지털 전환 성패는 앞으로 5년에 달려 있다.

10년이면 한 나라가 일어설 수도, 쓰러질 수도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셋째는 '인지의 부조화'다.

문제를 알면서도 생각이 엇갈려서 발등의 불부터 끄자는 식이다.

정치계나 관료들에게 많이 해당하는 말이다.

에너지 정책의 미래에 대해 불안하게 생각하면서도 우선 당장 넘어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인식 부조화' 문제다.

2030년까지 탄소 감축 40%가 경제에 얼마나 큰 부담이 될지를 알면서도 곧 있을 영국의 기후변화총회부터 잘 넘겨야 하겠다는 생각 같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인리히 법칙의 경시'다.

즉 '설마병'을 말한다.

큰 사고가 터지기 전에는 사전에 많은 징후와 작은 사고가 생기는데, 그것을 무시하다 대형 사고를 맞는다는 의미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가 기습적으로 찾아온다.

'올여름 결국 잘 넘어갔으니 내년에도 별일 있겠나' 하는 생각이다.

매년 경제가 성장하고 전기차가 늘어나고 데이터센터가 많이 생기면 당연히 전기 수요는 늘어난다.

반면 원전을 묶어놓고 간헐성의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한편 석탄 발전을 퇴장시키면 수급에 애로가 생기는 것도 필연적인데, 특별한 조치 없이 '설마 별일 있겠나' 한다.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는 균형적 사고와 정교한 퍼즐 맞추기가 매우 필요하다.

모든 변수를 다 맞힐 수 있는 정답이 있다고 믿는 것도 '확증편향'이다.

차선이라도 찾아서 국민을 설득해야 할 일이 다음 정부 몫이다.

대선 후보들의 에너지 분야 공약이 전문가들에게 귀를 열고 매우 신중하게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다.

물은 떨어져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전기는 끊기면 인간 사회의 거의 모든 것이 올스톱(All-Stop)된다.


[조환익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전 한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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