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잃어버린 10년 되찾나...오너 귀환에 M&A·신사업 '째깍째깍'

태광그룹 임직원은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다.

오너인 이호진 전 태광산업 회장이 재판과 구속으로 자리를 비운 기간이다.

‘황제 보석’ 논란을 일으키며 8년 5개월에 이르는 재판 끝에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이 전 회장이 만기 출소했다.

태광그룹 안팎에서는 알짜 그룹으로 평가받아온 태광그룹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지 주목한다.


이 전 회장은 과거 ‘M&A의 명수’라는 평가를 들었을 만큼 투자에 강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20여개 지역케이블TV 사업자를 인수해 티브로드를 탄생시켰다.

2005년 쌍용화재(현 흥국화재), 피데스증권중개(현 흥국증권), 예가람저축은행 등을 연이어 인수했다.

이 전 회장 부친인 故 이임용 태광그룹 회장도 동양합섬, 대한화섬, 흥국생명, 고려저축은행을 인수하며 사세를 키웠다.

이 전 회장도 이 같은 경영 DNA를 이어받아 태광그룹은 M&A에 강하다는 이미지를 얻게 됐다.

잇단 M&A로 덩치를 키워 2021년 재계 순위는 30위권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이 횡령과 배임으로 사법 리스크에 휘말리자 큰 결정이 ‘올스톱’됐고 사세도 기울어졌다.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의 연간 영업이익은 10년 사이 8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전 회장이 수년간 공을 들였던 티브로드는 SK브로드밴드로 넘어갔다.

재계 순위는 지난해 49위까지 추락했다.

오너 부재 속 그룹이 능동적으로 투자에 나서지 않은 게 순위를 끌어내렸다는 분석이다.

이 전 회장이 복귀하면 그룹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앞장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호진 전 태광산업 회장
▶취업 제한으로 공식 복귀 어렵지만
▷최대주주로 사실상 오너 역할 수행
태광그룹은 오너 복귀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무엇보다 공식적으로 직책을 맡을 수 없어서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억원 이상 횡령·배임을 저지른 경우 관련 기업에 5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태광산업뿐 아니라 금융 계열사인 흥국생명, 흥국화재, 고려저축은행 등의 경영 복귀도 안 된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에 따르면 금융관계법령에 따라 벌금 이상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집행이 면제된 날부터 5년이 지나지 않으면 금융회사 임원이 될 수 없다.

이 전 회장은 차명 주식을 허위로 기재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한 혐의(자본시장법·공공거래법 위반)로 올해 3월 벌금 3억원 약식 명령을 받았다.

정식 재판을 청구하지 않아 4월 초에 벌금형이 확정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이 이 규정에 따라 계열 금융사 임원을 맡을 수 없고, 자문료 등으로 가장해 급여를 받을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건강상 문제도 있다.

이 전 회장은 간암 3기로 간의 30%가량을 절제한 상태다.

이런 이유로 태광그룹은 “이 전 회장이 당분간 건강 회복과 치료에 주력하고 전문경영인이 중심이 돼 조용히 변화를 모색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흥국생명 사옥. <연합뉴스>
▶LG전자와 합작사 신호탄?
▷새 전문경영진 영입하며 분위기 쇄신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최대주주로서의 지배력이 강력하기 때문에 이 전 회장이 ‘사실상’ 경영에 복귀하는 시나리오에 무게를 싣는다.

이 전 회장은 그룹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 지분 29.48%를 갖고 있다.

흥국생명 지분은 56.3%를 보유 중이다.

흥국화재는 흥국생명이 59.56%, 태광산업이 19.63%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투자를 더 이상 늦추기 힘들다는 절박함도 사실상 경영 복귀로 결론 내리는 배경이다.

10년간의 투자 지연이 태광그룹을 ‘탑티어’ 그룹에서 끌어내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룹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7406억원, 535억원으로 2011년 대비 3분의 1, 5분의 1로 줄었다.

태광산업 자회사로 그룹의 대표 ‘캐시카우’였던 티브로드가 2019년 SK브로드밴드에 팔린 점도 사세 위축의 한 요인이 됐다.


태광그룹은 이 전 회장 출소에 맞춰 투자를 재개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

태광산업은 지난해 7월 섬유사업본부 대표로 효성 출신 박재용 대표를, 석유화학본부 대표로 정찬식 전 LG화학 ABS 부사장을 선임하며 조직 쇄신에 나섰다.

흥국생명도 지난해 5월 위성호 신한은행장을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지난 7월 태광산업이 LG화학과 합작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한 것도 의미 있는 신호로 해석된다.

태광산업은 2012년 이후 단 한 번도 시설 투자를 하지 않았다.

그동안 합작사를 설립한 전례도 없다.

태광산업이 시설 투자에 나선 것은 2012년 3월 1500t 규모의 탄소섬유공장을 증설한 이후 처음이다.

양 사가 신규 설립하기로 한 TL케미칼은 아크릴로니트릴(AN) 생산 기업으로 AN은 플라스틱과 접착제, 합성고무 등에 쓰인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캪G화학은 초호황을 누리는 NB라텍스, 고부가합성수지(ABS) 생산에 필요한 AN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봤다”며 “AN 생산은 라이선스 등의 영향으로 진입이 쉽지 않아 태광산업과 합작사를 설립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AN 생산량 1위 기업은 동서석유화학으로 연 56만t을 생산한다.

태광산업의 생산량은 연 29만t으로 업계 2위다.


태광산업은 정부 주도 수소 사업에도 뛰어든다.

한국수력원자력, 현대자동차, LS일렉트릭, SK가스, 두산퓨얼셀 등과 공조를 통해 연료전지 원료인 ‘부생수소’를 공급하기로 했다.


흥국생명은 금융권에서 오랜 경험과 폭넓은 인맥을 가진 위 부회장이 앞장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냐는 기대가 나온다.

위 부회장은 35년 동안 금융지주와 은행, 카드 등을 거친 금융 전문가다.

이 전 회장과 호흡을 맞춰 금융 부문 신사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이 전 회장은 소송 중인 고려저축은행 교통정리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듯 보인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고려저축은행에 대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2019년분) 결과 대주주 이 전 회장에게 지분을 10% 밑으로 낮추라고 지분 매각 명령을 내렸다.

이 전 회장이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태광그룹이 이미지 개선 작업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이 전 회장은 기나긴 재판 기간 동안 줄곧 구속집행정지, 병보석으로 실질적인 처벌을 피해 ‘황제 보석’이라는 사회적 파문을 남긴 바 있다.

오너 일가에 대한 과도한 배당, 일감 몰아주기 이슈도 가라앉지 않았다.

이 전 회장과 아들인 이현준 씨는 비상장사 티알엔을 통해 거액의 배당금을 받아 논란에 휩싸였다.

또한 공정위는 2019년 태광그룹 계열사 19곳이 총수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티시스와 메르뱅에서 김치와 와인을 시가보다 3배 높은 가격에 구매했다는 ‘일감 몰아주기’를 지적한 바 있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1호 (2021.10.27~2021.11.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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