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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이 사람 좀 만들어 주소" 이 한마디가 160조 그룹 만들었다
기사입력 2021-07-3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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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
[인사이드아웃] 남촌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이 별세한 지 19년이 흘렀다.

허 명예회장은 2002년 7월 29일 별세했다.

그는 LG그룹의 창업과 성장의 견인차 역할, 그리고 GS그룹 뿌리를 잉태시킨 기업가다.

또한 금성전선(현 LS전선) 최고경영자(CEO)로, 사세 확대에 큰 기여를 했다.

허 명예회장 사후 LG에서 LS(2003년)와 GS(2004년)가 계열분리됐다.


변규칠 LG 고문은 2002년 영결사에서 "(허준구) 명예회장께서는 LG 모체인 락희화학공업사가 설립된 1947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돼 온 구씨와 허씨 간 동업 관계를 굳건히 받친 큰 기둥이셨다"며 "오늘의 LG를 있게 한 신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온화한 성품과 넓은 가슴을 가진 명예회장께서 계셨다"고 말했다.


허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 멤버 중 한 명이다.

그와 고 구인회 LG 창업 회장과의 인연은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인회 회장이 부산에서 조선흥업사를 운영하던 시절, 진주 승산마을 만석꾼 허만정 공이 셋째 아들 허준구(당시 24세)와 함께 그를 찾아왔다.

허준구 회장은 구인회 회장의 동생인 구철회 LG 창업 고문의 맏사위다.


이 자리에서 허만정 공은 "이 아이를 맡기고 갈 터이니 밑에 두고 사람 만들어주소. 내 사돈이 하는 사업에 출자도 좀 할 생각이오"라며 구인회 회장에게 돈과 아들을 투자했다.

구씨·허씨 양가의 동업이 시작된 순간이다.


구인회 회장은 허씨가의 투자금을 기반으로 부산 흥아화학에서 생산하는 '아마쓰크림' 판매대리점을 시작했다.


이듬해인 1947년 1월 구인회 회장은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설립했으며, 허준구 명예회장은 이 회사 영업담당 이사를 맡게 됐다.

그는 금전 관리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는 평을 받았으며, 주로 판매·구매를 담당했다.

수금하러 거래처를 돌아다닐 때는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고 한다.

LG가 플라스틱 제조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화장품 크림 판매대금 수금을 통한 공장 건설자금 확보 책임도 맡았다.


그는 1950~1960년대 LG그룹 초창기 탁월한 영업 수완과 경영능력을 발취해 LG의 성장 토대를 닦았다.

현장을 떠나지 않는 부지런함으로 초창기 LG그룹의 성장을 견인했다.

1950년대 중반 첫 국산 치약 생산 때엔 판매 총책으로 리어카에 치약을 싣고 시장 곳곳을 뛰어다녔을 정도다.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
그는 1962년 금성사(현 LG전자) 부사장, 1966년 락회화학공업사 부사장을 거쳐 1968년 그룹 기획조정실장이 됐다.

초대 기획조정실장으로 그룹의 체계를 탄탄하게 다지고 락희화학과 금성사 등의 기업공개를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남촌은 기획조정실 간부들과 함께 치밀한 연구를 거쳐 구인회 회장의 기업공개 의지를 뒷받침했다.

당시 일부 임원들은 상장을 반대했다.


1969년 2월엔 그룹 본부를 부산에서 서울로 이전했으며, 그해 9월 민간 기업 최초로 전자계산기를 도입해 전산 체계 구축했다.

모두 허준구 기획조정실장 때다.


1970년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LG의 성장 배경에는 유교적 위계질서에 충실하고 인화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원칙을 중시하는 기업문화와 구성원 간 화합의 구심체였던 허준구 명예회장 역할이 컸다.

허 명예회장은 융화와 조정 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1970년 기조실장에서 금성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1971년 금성전선(현 LS전선) 사장 자리에 올라 1995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금성전선을 키워왔다.

1982년 럭키그룹 부회장, 1984년에는 금성전선 회장 겸 럭키금성그룹 통할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1995년 구자경 명예회장이 구본무 회장에게 LG그룹 회장 자리를 넘겨주면서 허준구 명예회장은 LG 원로 경영자들과 함께 은퇴했다.

그리고 LG전선 회장은 허 명예회장 장남 허창수 회장이 맡게 됐다.

허창수 회장은 2002년 3월까지 LG전선 회장을 맡다가 LG건설(현 GS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허준구 명예회장은 사심 없이 오로지 기업 경영의 외길을 걸어왔다.

남촌은 언론 인터뷰에도 나서지 않았으며, 외부 활동 등도 자제했다.

재계에서는 '얼굴 없는 경영자'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다.


대의명분에 충실하며 논리 정연한 사고와 탁월한 균형감각으로 역경과 난관을 극복했다.

소박하면서도 근검한 생활 태도도 잃지 않았다.


친화력이 남달랐던 그는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겼을 뿐만 아니라 히타치전선, 칼텍스 등 외국기업과 합작투자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며 원활한 소통을 책임졌다.

너그러움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덕장의 리더였으며, 믿고 맏기는 책임경영과 현장 우선의 솔선수범 리더십이 돋보였다.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남촌에 대해 "그는 합리적인 원칙주의자로서 늘 순리를 따랐으며, 관용과 너그러움으로 사람들을 품은 대인이었다"며 "그러한 인화 정신이 오늘날 LG그룹과 GS그룹의 토대를 닦아 한국 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한 버팀목이 됐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정승환 재계·ESG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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