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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 이어 재계 대변하는 범LG가 오너 경영인
기사입력 2021-02-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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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열 무역협회 회장
[인사이드아웃]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지난 24일 제31대 한국무역협회 회장에 선출됐다.

그는 앞으로 3년간 무역협회를 이끌게 된다.


구자열 회장은 고(故) 구평회 E1 명예회장에 이은 범LG가(家) 출신 두 번째 무역협회 수장이다.

전경련 회장도 범LG가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LG에서 분리된 GS건설 회장이다.

이 밖에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 회장은 전경련 부회장, 구인회 회장 사돈인 고 홍재선 쌍용양회 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역임했다.


고 구평회 무역협회 회장·E1 명예회장
구자열 회장의 부친 구평회 E1 명예회장은 1994~1999년 제22·23대 무역협회 회장을 지냈다.

구평회 회장은 박용학 대농그룹 회장에 이은 두 번째 민간 출신 무협 회장이었다.

구 회장은 1995년 WTO 출범을 앞둔 1994년 기업세계화 지원기획단을 발족했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무역환경은 급변했으며, 당시 무역협회는 수출입통관 EDI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무역 활성화에 힘썼다.

또한 1995년 회원서비스센터를 신설했으며, 그해 수출 1000억달러 돌파 기념행사도 개최했다.

1996년 종합수출상품정보 웹사이트를 구축해 수출상품 인터넷 홍보를 시작했으며, 창립 50주년 기념식도 열었다.


아셈(ASEM)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

구평회 회장은 1996년 9월 아셈 및 한국종합무역센터 확충 사업추진단을 구성했다.

아셈 정상회의는 구 회장이 물러난 이듬해인 2000년 10월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구 회장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홍콩 코리아센터를 6250만달러에 매각했다.

당시 최고 달러당 2000원에 육박했던 환율 덕분에 한국의 외환보유액을 채우는 데 일조했다.


구 회장은 기업인 시절엔 경제외교관으로 불릴 정도로 해외통이었다.

그는 호남정유 사장, 럭키금성상사 회장, 한무개발 회장, 럭키금성경제연구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상임이사, 한미친선회 이사, 한미경제협의회 회장, 한미재계회의 회장, 태평양경제협의회 국제회장, 주한페루공화국 명예총영사 등도 지냈다.


고 구인회 전경련 부회장·LG 창업 회장
고 구인회 LG 창업 회장은 1961년 10월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경련)에 가입했으며, 1964~1966년 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구인회 회장은 구평회 회장의 큰형이다.

구인회 회장은 1956년 무역협회 이사로도 취임했다.


1966년 그는 김용완 전경련 5대 회장에 이어 차기 회장 후보로 지목됐다.

재계 인사들은 구 회장에게 전경련 회장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으나, 그는 고사했다.

당시 정유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6년 말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최초 민간 정유사업자로 선정됐다.


고 홍재선 쌍용양회 회장
구 회장이 고사한 자리는 사돈인 홍재선 회장이 맡게 됐다.

홍 회장은 1966년부터 1969년까지 6~8대 전경련 회장을 지냈다.

홍 회장은 구 회장의 차남인 고 구자승 전 LG상사 사장의 장인이다.

구본걸 LF 회장에겐 외조부다.

앞서 홍 회장은 1961년 한국경제인협회 창립총회에서 이사로 선출됐다.


그는 금성방직 전무와 쌍용양회 회장, 한국개발금융 회장을 역임한 전문경영인이다.

홍 회장은 1966년 전경련 회장 재직 시 국제개발금융회사 설립준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67년엔 경제계 최초의 파월군인장병 위문단 단장 자격으로 월남(현 베트남)을 방문했다.

홍 회장은 또한 한일 합동 경제간담회 한국대표단 단장도 역임했다.


홍재선 회장은 구인회 회장 추모글에서 "구인회 회장은 한국경제인협회 발족 초기부터 협회를 훌륭히 키워 나가야 한다며 안팎으로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며 "그는 특히 경제가 발전하려면 한국 기업이 발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인의 단결된 힘과 발언권이 있어야 한다고 늘 주장했다"고 전했다.

구 회장은 협회 경비 부담에 있어서도 솔선해서 부담했다.

특히 홍재선 전경련 회장 시절엔 그 누구보다 전경련에 협조를 잘했다고 한다.


고 구자경 전 전경련 회장·LG그룹 명예회장
구인회 회장의 장남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1987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 회장에 이어 제18대 전경련 회장을 지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1989년까지 2년간 전경련 회장을 맡으며, 재계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국민 속의 기업인, 국민경제를 위한 기업'을 모토로, 전경련 산하 경제사회개발원을 설립했다.

경제사회개발원 목적은 시장경제에 대한 홍보와 사회복지사업이다.


전경련은 구 명예회장의 별세 직후 "고인은 언제나 바른 모습을 보인 기업가였다"며 "공장에서 직원들과 동고동락하며 대한민국의 화학산업을 일궜고 전자산업을 챙기며 기술입국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2011년 2월 제33대 전경련 회장으로 선임됐다.

허 회장은 37대까지 전경련 회장을 5연임 했다.

허 회장은 구자열 회장이 이끄는 LS그룹의 주력회사인 LS전선(옛 LG전선) 회장을 지냈다.


LG전선은 허창수 회장의 부친인 고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이 키운 회사다.

허창수 회장은 1992년 5월 LG전선(현 LS전선) 부사장에 선임된 데 이어 1995년 2월 LG전선 회장을 맡게 됐다.

1995년 구자경 명예회장이 구본무 회장에게 LG그룹 대권을 넘겨주면서, 허준구 회장과 구평회 회장 등 LG 원로 경영자들은 은퇴했다.


허 회장은 2002년 3월까지 LG전선 회장을 맡다가 LG건설(현 GS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구자열 회장의 사촌형인 구자엽 LS전선 회장은 2000년부터 LG건설 대표를 지냈으며, 2003년 희성전선(현 가온전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허창수 회장과 구자엽 회장은 LG건설에서 한솥밥을 먹은 셈이다.


LG전선은 허준구·허창수 부자의 땀이 묻은 회사지만, LG에서 GS·LS가 떨어져나가면서 LS그룹 몫으로 가게 됐다.


[정승환 재계·한상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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