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률이 1% 높아질 때마다 사람 4만명이 더 죽어." 영화 '빅쇼트'의 이 대사는 체감하기 어려운 거시지표가 얼마나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숫자의 이면엔 진짜 현실이 있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0.8%로 본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전망은 그래서 불안하다.


무엇보다 내수 회복을 전제로 한 숫자라는 점에서 그렇다.

미디어를 달구는 소비쿠폰 '오픈런'은 하반기 내수 회복을 짐작케 하는 반가운 신호다.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중소상인의 체감경기는 다소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성장률이 0%대에 머물렀다는 건 경제의 진짜 흐름이 단순히 '소비 위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진짜 문제는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바깥에서 터지고 있다.

미국발 수출 불확실성은 거세지고, 제조업 전통 강자의 자리는 더 이상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반도체, 조선 등 주력 산업 곳곳에 새로운 경쟁자가 밀고 들어오고 있다.

기술력이 전부가 아니라 실행 속도와 자원 동원이 전면전처럼 벌어지는 구도다.


수출 둔화, 국가 간 산업 경쟁 심화, 지정학적 리스크 같은 외부 변수들은 한국의 대응 여지를 점점 좁히고 있다.

위기의 무게는 안쪽이 아니라 바깥에서 밀려든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전부터 '인공지능(AI) 대전환'을 반복적으로 강조해온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외부 변수들이 우리 경제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틀 전체를 바꿔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함, 기존 산업 구조로는 더 이상 세계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읽힌다.


절박함과 위기감은 말에도 스친다.

구 부총리는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답변을 하며 '진짜 AI 전략' '진짜 산업 혁신'을 수없이 강조했다.

이에 청문회에 참석한 한 의원은 구 부총리에게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AI에 물어보니 '진짜'를 자주 말하는 사람은 불안과 불신, 과도한 스트레스 상태라고 하더군요."
잊을 만하면 다시 들려오는 0%대 성장 전망. 이번엔 진짜 불안하다.


[류영욱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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