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꼰대는 아니잖아”…욕먹기 싫은 부장님, 리더답지는 못하시네요

수평적 리더십에 대한 오해와 진실
지난 십수 년간 많은 기업은 경쟁력 제고와 조직 활력 회복을 내걸고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에 몰두해왔다.

수평적 리더가 많아지고 자율적 문화를 정착시키면 자연스럽게 구성원의 내적 동기를 자극하고 자발적 몰입과 협업을 통해 성과 역시 향상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 바탕에 있었다.


위계는 비합리적이고 시대에 뒤처진 것으로 간주됐고, 제거해야 할 장벽처럼 여겨졌다.

일부에서는 수평성 자체가 절대적 가치처럼 받아들여지고 하나의 유행이 됐다.

이와 더불어 재택근무, 유연근무 등을 도입하고 휴게 공간에 당구대, 안마의자를 설치하며 사무실 벽면에 각종 구호나 행동강령 포스터를 붙임으로써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문화로 전환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수평적 리더가 과연 성과를 이끄는 좋은 리더일까? 더 근본적으로 기업문화의 본질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서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할까? 인사·조직경영 전문 자문회사인 밸러스의 정해주 대표 얘기를 들어봤다.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 A는 50대 중반이다.

1990년대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상사는 신의 영역에 존재했다.

임원이 퇴근할 때는 도열해 배웅하는 것이 예의였고 그 어떤 사적인 관심 사항에 대한 질문도 거부한 적이 없었다.


부서장이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몇 군데 예약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둘째가 태어나는 날조차 회식에 참석했다.

상사의 무용담은 거의 외울 지경이었고 하루에 수차례 사담 수준의 회의가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꼭 다음 날 아침까지 요구하는 보고서를 만들려면 저녁을 먹고 나서야 제대로 시간을 쓸 수 있었다.


토요일은 오전 근무가 끝나고 상사가 좋아하는 당구를 밤까지 친 다음 모자란 일을 하기 위해 매주 일요일에 나오는 것이 예삿일이었다.


그러나 부서장이 되고 보니 세상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인사에서 오랫동안 독려한 대로 A는 수평적 리더가 되기로 했다.

지시나 간섭 없이 권한을 최대한 위임하고, 부하들이 자율적으로 일하도록 했으며,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듣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일을 진행해왔다.

설령 회식이나 사담이 있어도 예전 꼰대 상사처럼 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만 직원들이 잘되라고 관심을 가질 뿐이었으며, 예전에 내가 어땠는지를 모르는 직원들에게 몇 차례만 과거에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알려줘 회사에 충성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하도록 도움을 주고자 했다.


A는 생각했다.

‘나같이 제대로 된 리더만 있었어도.’ 그런데 얼마 전 다면평가 진단 결과는 충격이었다.

A는 전문성도, 결단력도, 추진력도 없으며 책임까지 방기하는 무능한 리더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존중을 가장한 꼰대라는 서술도 많았다.

억울했다.

인사팀에서 하라는 대로 수평을 추구해왔건만 도대체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인가?
# B는 어린 자녀와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는 잠자고 일어나는 시간, 학습 여부, 게임 시간, 스마트폰 사용 등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결정했다.

그 무엇이든 아이가 하기 싫다고 하면 바로 그만두게 했다.


아이의 기분을 살폈으며, 기분을 좋게 하는 데 애쓰고, 이를 위해 원하는 것은 모두 갖춰줬다.

아이가 어떤 떼를 써도 조언만 했다.

그러나 아이는 권리만 알고 책임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포함해 제어가 필요한 부분에서도 억제력을 전혀 습득하지 못했다.

아이는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아빠, 길을 헤매고 있을 때 가이드를 제시해줄 수 있는 아빠를 원했었음에도 B는 친구를 명분 삼아 끝까지 피해 갔다.


대부분의 기업은 위계, 꼰대, 갑질의 리더가 대부분이었던 과거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수평과 자율을 기치로 변화를 도모해왔다.

이를 통해 기존의 폐해 중 일부를 완화하는 데 기여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평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수직에 대한 막연한 거부를 이끌었다.


수평적 리더십의 핵심은 개인에 대한 존중과 의견 개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지, 리더가 권한과 책임까지 방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에도 많은 리더는 수평적 리더십을 잘못 이해하거나 피상적으로 접근했다.

책임 있는 의사결정과 추진력조차 위계로 간주돼 조직 내 혼란과 비효율이 증가하는 일이 발생했다.


리더 A는 직원에게 최대한 권한을 위임하고, 지시를 최소화하며, 직원이 자율적으로 일하게 한다고 착각했다.

문제는 A가 수평적 리더십이라는 명목 아래 실제로는 리더로서 책임져야 할 본질적인 의무까지 회피했다는 것이다.

수평을 잘못 이해했다.

자율은 있었지만 방향이 없었으며, 의견 청취는 하되 결정이 없었다.

수평은 무기력한 방임이 됐다.


가정에서의 훈육도 유사한 부분이 있다.

아이에 대한 존중을 빌미로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 할 부분까지 놓치게 되는 것들이 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제어조차 하지 않는 것이 친구 같은 아빠는 아닐 것이다.


리더십에서 수평적 접근과 수직적 접근은 상호 배타적이거나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일의 영역(Way of Working)에서는 수직적 리더십이, 개인 삶의 영역(Way of Living)에서는 수평적 리더십이 발휘돼야 한다.

즉 조직 내 의사결정과 업무 추진 영역에서는 명확한 위계와 책임이 존재해야 하고, 개인의 다양성과 인간관계 영역에서는 자율과 존중이 중심이 돼야 한다.

수평적·수직적 리더십은 씨줄과 날줄의 관계다.


위계로 인한 비효율, 의사결정 지연 등은 수평 미흡의 문제라기보다 리더의 무능에 기인한 것이 더 많음에도 단순히 수평은 옳고 수직은 잘못된 것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은 우리 시야를 방해한다.

수평을 마치 절대선인 것처럼 신봉하다 보면 조직의 본질인 책임, 추진, 결정 등이 사라진다.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배려, 일에 대한 책임은 함께 존재해야 함에도 몇몇 리더는 수평을 방패 삼아 책임을 회피하고 결정을 직원에게 미룬다.

자신이 잘 모르는 일은 위임이라는 근사한 말로 포장해 방임한다.

진정으로 피드백해야 할 쓴소리는 회피하고 명백한 잘못에도 눈을 감는다.

무조건적인 자율 방임은 직원에게 책임과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리더가 되는 지름길이다.

리더는 있지만 리더십은 사라진다.


리더가 스스로 일을 이끌어 나가는지, 밤새 고민하는지, 속도 있게 추진해 나가는지 등은 본인을 제외한 주변인들이 더 잘 안다.

이러한 책임에 수반하는 것이 권한이며, 권한은 본질적으로 수직적이다.


가장 나쁜 리더는 일에선 수평을 언급하면서 책임을 전가하고, 생활 방식에는 꼰대적인 위계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리더들 밑에서 업무는 존재하지 않고 책임 전가만 남는다.

일의 추진은 늘어지고 흐지부지된다.


자율을 주면 알아서 성장할 것이라는 환상에서도 깨어나야 한다.

많은 리더가 자율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목표도 역할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최소한 ‘What’의 영역은 명확해야 한다.

자율은 ‘How’의 영역에 가까운 것으로, 이를 체계화하지 않으면 소수가 모든 일을 떠안고 다수는 책임 없는 방관자가 된다.


많은 직원이 진정으로 원하는 좋은 리더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결과를 만드는 사람이다.

진정한 존경은 호감이 아니라 일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다.


[정리 = 정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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