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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정책회의에 참석한 조지프 나이. 매경DB |
'소프트 파워' 개념을 정립한 국제정치학계의 큰별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지난 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8세.
하버드대 교지인 하버드 크림슨 등에 따르면 제러미 와인스타인 학장은 이날 케네디스쿨의 학내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나이 교수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1937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출생한 나이 교수는 1958년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뒤 영국 옥스퍼드대 로즈 장학생으로 유학한 후 1960년 미국으로 돌아왔다.
1964년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엔 같은 대학 교수로 임용됐다.
나이 교수는 학자로서 로버트 코헤인 프린스턴대 교수와 함께 국제정치학계에서 '신자유주의' 이론을 제창했다.
국가뿐 아니라 기업과 국제기구 등 여러 이해관계자의 움직임에 따라 국제 관계 질서가 구성된다는 이론이다.
또 개별 국가가 무력과 경제력 등 '하드 파워'보다 문화적인 매력을 내세워 타국을 설득하는 힘을 '소프트 파워'라고 처음으로 규정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정치와 코로나19 대응, K팝 등 대중문화의 성공을 소프트 파워의 예시로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고인은 학자로서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미국의 대외 정책 부문에 직접 뛰어들어 국제 정치 이론을 현실과 접목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그는 1977년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국무차관보와 국가안보회의 의장직을 맡으며 미국의 글로벌 핵 비확산 체제 수립에 관여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국방부 차관보와 국가정보위원회(NIC) 의장을 지내며 동아시아 정책 수립에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특히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최대 경쟁자가 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에 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담은 '나이 이니셔티브'를 내놓기도 했다.
그는 차관보 재직 당시 통일 이후 한반도에도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학계에서 꾸준히 활동한 나이 교수는 현실 정치와 대외 관계에도 조언과 고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그는 가장 최근인 지난해 2월에도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가 주최한 대담에서 "우리가 억지력을 강화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우리의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중국에 러시아와 북한이 있다면 미국에는 유럽과 호주, 일본, 한국이라는 동맹이 있다"고 말했다.
대외 원조를 줄이고 동맹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거침없는 쓴소리를 했다.
지난 3월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을 통해 "부동산 업계 출신인 그(트럼프 대통령)는 권력이라는 개념을 압박과 거래에만 국한된 좁은 시야로 본다"며 "진정한 현실주의자는 소프트 파워를 외면하지 않으나 트럼프는 그렇지 않다.
앞으로 4년간 미국의 소프트 파워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인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2년 매경미디어그룹이 개최한 '제23회 세계지식포럼'에서도 영상으로 한국 시민들과 만나며 미·중 충돌 속 한국이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할지 탁월한 통찰을 제시했다.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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