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인사이트]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뮤지컬계 킹스맨…이야기를 담다 비하인드 - 뮤지컬 배우 남경주 편


▣ 편집자주 = CEO인사이트 14호에서는 인터뷰 프로그램 <이야기를 담다>의 제작진이 공개한 촬영 후일담이 담겼습니다. <이야기를 담다> 비하인드는 김원경 PD(‘김 피디의 비하인드 컷’)와 아나운서 이담(‘이담의 뒷담; 뒷이야기를 담다’), 김수진 작가(‘김 작가의 크레딧 쿠키’) 등 제작진과 출연들이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촬영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담다> 비하인드는 CEO인사이트를 통해 격주 단위로 공개됩니다. <이야기를 담다>는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30분에 매일경제TV와 유튜브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이야기를 담다> 비하인드 뮤지컬 배우 남경주 편 전문.

뮤지컬 배우 남경주는 데뷔 이래 40년간 꾸준히 무대에 서며, 뮤지컬 대중화의 길을 개척해온 1세대 배우다. <시카고>, <레미제라블>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관객과 소통해온 그는, 백상예술대상 뮤지컬 부문 최초 수상자이기도 하다. 현재는 교수로서 후배들을 이끌며, 무대 안팎에서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있다.


◇ 김수진 작가의 크레딧 쿠키 - 젠틀맨의 조건


‘조상을 잘 둔 것이 젠틀맨의 기본 요건이다.’ 젠틀맨의 나라 영국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대니얼 디포의 말이다. 태생부터 귀족인 이런 젠틀맨도 있지만 노력 통해 자격 갖춘 후천적 젠틀맨도 존재한다. 뮤지컬 배우 남경주처럼.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예의가 바른 자세, 행동상의 매너는 물론이고 사람의 기분을 헤아리는 배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갖춘 사람,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젠틀맨 1단계!
깔끔한 착장, 정돈된 턱수염, 공손하게 모은 두 손, 일단 젠틀맨의 기초를 갖췄다.

젠틀맨 2단계!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 다정하게 맞춰주는 시선, 말끝을 흐리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말투, 스텝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는 매너까지 뭐 하나 흠잡을 게 없다.

젠틀맨 3단계!
젠틀맨 최고의 경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방송 내내 묻어났다.

“뮤지컬 1세대라는 표현은 맞지 않아요. 뮤지컬계 선배님들의 노력이 사라질 수도 있거든요. 윤복희 선생님이 진짜 1세대죠.”

1995년 백상예술대상에서 뮤지컬 <그리스 록큰롤>로 인기상을 받았을 때 그 순간을 물었더니, 답변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제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니까 박탈감을 느끼는 후배들이 많았을 거예요. 제가 더 베풀고 챙겼어야 하는데, 미안하고 부끄러워요”

매너란 스스로 감정을 참는 일이라고 했다. 잘난 체하지 않고 최고의 자리를 과시하기보다 언제든 자신의 것을 내어줄 자세를 갖춘 매너남, 남경주는 대한민국 젠틀맨의 정석이다.

# 사랑한다면 남경주처럼

뮤지컬계에서 배우 남경주는 ‘원조 로맨티스트’로 불린다. 데뷔 40년을 넘긴 그는 맘마미아에서는 첫사랑 도나를 위해 그리스까지 찾아온 남자 샘으로,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출가 줄리안 마쉬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스칼렛만을 사랑하는 레트 버틀러로, 라카지에서는 아내의 아픔과 슬픔까지 감싸주는 가정적인 남편으로, 오!캐롤에서는 20년 넘게 한 여자만을 짝사랑하는 로맨티스트로 셀 수 없는 무대에서 쉴 틈 없이 사랑했다.

무대에서 단련된 로맨티스트는 현실에서도 극적이었고, 러브 스토리는 한 편의 뮤지컬이었다.


“<키스미 케이트>라는 공연을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하고 있을 때였어요. 한 여성이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첫 눈에 반한 거다. 그 길로 그 여성을 따라갔다고 한다.

“예술의전당 로터리까지 올라가는데 제가 가서 먼저 가서 앞을 막았죠. 차를 세운 거예요. 차창을 두드려서 연락처 주시면 안 되겠냐고 했어요”

역할과 현실이 혼동될 만큼 그는 무대 위에서 사랑을 갈구했고, 현실에서 그 사랑을 쟁취했다. 앞도 뒤도 재지 않는 직진남. 사랑한다면 남경주처럼!


◇ 이담의 뒷담; 뒷이야기를 담다 - 무대 위의 별 달빛 아래 그림자


늘 그렇듯 인터뷰 준비를 하면 인터뷰 대상의 사생활도 궁금하기에.. 배우 남경주의 SNS를 찾아봤다. 연예인들의 그 흔한, 꽉 짜여진 SNS가 아니었다. 나슨한 듯 진심이 담긴 게시물들이었다. 대부분이 출연하는 작품들 이야기였는데, 게시물 하나하나에 작품에 대한 애정이 깊게 묻어났다.

데뷔 40년이 지난 베테랑 뮤지컬 배우임에도, 마치 연습생의 일기처럼“열심히 하자!”라고 써놓은 글도 있었다.

해외여행 사진도 있었다. 뮤지컬 공부를 하러 가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10년 차 교수님이시지만 아직도 이른바‘뮤지컬 단기 유학’을 떠나는 열혈 학생이었다.

# 무대 위 완벽한 자연스러움

“작품이 보여야지, 배우가 보이면 안 돼.”작품 속 인물로 존재해야지, 배우 자신으로 보여지면 안 된다는 거다. 배우로서 더 큰 박수를 받는 것보다 작품의 완성도를 더 생각하는 배우. 그래선지 남경주 배우는 완벽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

무대는 완벽해야 하니까 무대 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수많은 연습으로 완전히 숙련돼야, 무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며 오로지 연습이 중요하다고 했다.

어떤 인터뷰에선 숙련되지 않은 젊은 배우들이 많다며 쓴소리도 했다. 본인이 그만큼 노력했고, 단단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배우가 되기 전에 인간이 돼라.”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늘 하는 말이라 했다.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장 존경받는 연기라며, 결국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연기를 잘 할 수 있다고 한다. 웃는 것도 자연스럽고, 감정 표현도 솔직해야 한다고….

# 뮤지컬 같은 무대 뒤

무대 뒤 남경주의 인생은 더 뮤지컬 같았다.


이 사진은 대학 시절 축제 퍼포먼스로 노숙자 역할을 했을 때다. 축제 기간 동안 하나의 인물이 되어 사는 게 학교 전통이었는데, 노숙자 역할을 맡았던 거다.정말 며칠을 안 씻고, 분장도 지저분하게 하고, 이 모습을 하고 명동 한복판에 누워있어 보기도 하고 구걸도 해봤다고 한다. 열정도 열정이지만, 얼마나 재밌는 청년이었을까.

# 평범함 그 언저리

한편으로는 참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빠인 남경주였다. 아내의 이야기에 눈이 반짝반짝 빛났고, 딸 이야기에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갔다. 사랑하는 가족과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게‘휴가’라는 행복한 아빠 그 자체였다.

남경주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평범 같은 건 안 바라. 그 주변 어딘가면 다 괜찮아.’ 라는 뮤지컬 속 대사가 좋다고 했다. 그의 인생은 휘영청 밝은 달빛 같으면서도 은은한 달빛 아래 그림자 같기도 했다. 그의 인생이 바로 지금 평범함 그 언저리에 있는 듯했다.


◇ 김원경 피디의 비하인드컷 - 형제의 꿈으로 빚은 교향곡


남경주는 아가씨와 건달들로 뮤지컬 스타로 떠오르며 뮤덕들을 마음을 사로잡았다. 뮤지컬계의 베테랑이자 대부, 스타들의 스승이라 불리지만 내가 그를 기억하는 건‘로맨틱 남경주’였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내의 차를 가로막고 전화번호를 묻는 그 모습, 뮤지컬 무대 위에서 배우들과 노래를 부르며 프러포즈하는 모습은 마치 인생을 뮤지컬처럼 살아가는 듯했다. 이런 낭만이 있어야 배우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걸까?

# 공연 8학군?

어린 시절, 다섯 살차이 나는 언니는 나의 전부였다. 예쁜 글씨와 그림으로 상을 휩쓸고, 노래마저 완벽했던 그녀는 나의 우상이었다. ‘꿈이 뭐니?’란 질문에 늘 ‘언니처럼 살 거예요’라고 답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이정표가 있다는 건 삶의 기교를 체득할 수 있는 기회였다.

남경주 배우가 형 남경읍을 기억하는 모습에서 난 나의 언니를 떠올렸다. 내 삶이 무렴하지 않도록 이끌어준 멘토란 반석에 감사할 뿐이다. 그의 형 역시 그에게 그런 존재였으리라.


남경주 배우는<공연 8학군>에서 자랐다고 한다. 공연 8학군? 남경주의 형은 서울예대 연극과에 재학 중이었고, 그때부터 남경주는 서울예대를 출입했다. 형은 연극과 동기들의 체조 연습을 초등학교 체조선수였던 남경주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예쁜 연극과 누나들의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을지 상상이 간다.

남경주 : 우리 형님 덕에 뮤지컬에 눈을 떴고 뮤지컬이라는 공연 존재도 알았어요. 형이 몸담았던 시립가무단 맨 오브 라만차, 더 판타스틱스 등 수많은 공연을 보면서 컸어요. 제가 진로를 고민할 때도 제 성향을 꿰뚫어 보고 뮤지컬을 권했어요.“야 너는 미술보다는 성향을 보면 뮤지컬 하는 게 좋겠다.” 그래서 뮤지컬을 일찍 시작할 수 있었죠.

동생이 너무 예뻐 업고 다녔다는 남경읍과 형의 멋진 무대를 보고 꿈을 키운 남경주.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형제애를 넘어선다. 무대 위 화려한 조명 아래서도, 그는 여전히 형의 무대를 보며 설렘을 느끼는 소년이었을 게다. 체조선수 출신의 동생이 뮤지컬 배우가 되기까지, 형은 때로는 엄격한 스승으로, 때로는 따뜻한 형으로 동생의 곁을 지켰을 것이다. 형제는 서로의 꿈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으리라.

‘예술은 삶을 비추는 거울’ 이라고 했다. 남경주는 무대에서 형의 모습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자신의 예술을 찾았다. 두 형제의 이야기는 ‘예술가의 길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서로의 꿈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하나의 교향곡’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들이 함께 써 내려간 이 아름다운 교향곡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이야기를 담다, 그 후 - 친절과 미소, 배려의 힘


2024년 말, 매일경제TV <이야기를 담다> 토크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요청받고 잠시 고민이 스쳤습니다. 경제 방송국이라는 특성상 딱딱하고 불편한 분위기면 어쩌지? 망설였지만 편안한 분위기에 금세 적응하여 촬영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배우이자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낯을 무척 가리는 성격이라 공연이나 강의, 인터뷰처럼 남 앞에 서는 것이 늘 긴장되고 마음이 불편할 때가 무척 많습니다.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배우 역시 일반적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인지라 다양한 여러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처럼 똑같이 혼자 외로워하고, 칭찬에 춤도 추고, 비평에 상처받기도 합니다.

이번에 토크쇼 <이야기를 담다>를 통해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상대가 누구이든지 먼저 미소와 칭찬, 진심 어린 배려로 상대방을 대해 준다면 주어진 상황이 아무리 달라도 그 시간과 공간을 밝고, 부드럽고, 편안하고,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충돌과 대립으로 그 어떤 시기보다 혼란스럽습니다. 현재 이 상황을 우리는 슬기롭게 극복해 내야만 합니다. 무조건 상대를 비판만 하는 것은 갈등만을 더 부추깁니다. 상대를 깎아내리고 평가하기보다 먼저 미소로 대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칭찬할 때 분위기는 밝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듯이 분위기를 밝게 바꾼 뒤 서로의 문제점을 찾아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린 예전보다는 휠씬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직업, 그리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개인과 집단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언제나 평화롭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타인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이웃에게 친절과 미소로 대하고 그들을 배려하는 것이 행복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토크쇼 <이야기를 담다>를 통해 느낀 이 작은 지혜가 저에게는 작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미소와 친절과 배려를 베풀어 준 제작진 모든 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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