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AFP = 연합뉴스]
2013년부터 12년간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를 이끌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오전 88세로 선종했다.


교황청 국무처장인 케빈 페럴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아침 7시35분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라고 발표했다.


페럴 추기경은 “프린치스코 교황은 삶의 전체를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헌신했다”고 말했다.


최근 심각한 폐렴 때문에 입원했다가 회복한 교황은 교황청으로 돌아온 뒤 활동을 재개했다.


전날인 부활절 대축일에는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을 만나고 부활절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는 고인의 생전 뜻에 따라 간소하게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품위 있으면서도 모든 그리스도인처럼 간소화된 예식을 원한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건강상의 문제로 자진 사임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빈하고 소탈한 행보로 즉위 직후부터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허름한 구두를 신고 순금 십자가 대신 철제 십자가를 가슴에 걸고 소형차에 몸을 싣는 겸손하고 서민적인 교황의 모습에 세계인들은 감동했다.

또한 그는 호화로운 관저를 놔두고 일반 사제들이 묵는 공동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생활하며 청빈한 삶을 몸소 실천했다.


그는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중학교 때 아버지가 회계 업무를 봐주던 양말공장에서 청소와 사무보조로 일했다.

공업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오전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엔 학교에서 식품화학을 공부했다.


교황은 주교와 추기경으로 있을 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촌 사목에 힘썼다.

1282년 만의 비유럽권이자 최초의 신대륙 출신 교황인 그는 분쟁으로 얼룩진 세계 곳곳에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보낸 종교 지도자로도 평가받는다.


적대적 관계에 있던 미국과 쿠바의 2015년 국교 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2017년에는 로힝야족 추방으로 ‘인종청소’ 논란이 불거진 미얀마를 찾아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2000년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2021년 이라크 땅을 밟아 무장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이 발발한 이래 교황은 끊임없이 평화의 목소리를 냈고, 2023년 10월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을 두고도 민간인 희생을 막고 분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와함께 교황은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아시아 대륙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할 정도로 한반도 평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당시 교황은 방북을 추진했지만, 북한의 소극적 태도로 무산됐다.


교황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방북 의사를 밝혔지만 끝내 성사되진 못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개최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두 번째 방한이 기대됐으나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방한은 차기 교황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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