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보복이 아니라 협상을 해야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협력하고 미국산 제품을 더 많이 사세요."
28일(현지시간)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트럼프 2기를 앞두고 내놓은 조언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무역 전쟁은 이익이 되지 않으며, 세계 경제를 퇴보시킬 수 있다"면서 협력을 강조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유럽연합(EU) 관세 범위를 10~20%로 설정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관세 범위를 정해뒀다는 것은 트럼프 당선인이 협상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유럽은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고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EU 내부에서 보복 관세로 맞대응하자는 강경론이 제기되자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라가르드 총재는 수입을 검토할 제품군으로 액화천연가스(LNG)와 군사 장비를 꼽았다.
그는 "미국산 LNG를 사들이거나 유럽에서 생산할 수 없는 군사 장비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수표책 전략을 통해 트럼프 당선인에게 '당근'을 제시하자는 취지다.
이 같은 의견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동의한 바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지난 8일 트럼프 당선인에게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제안했다.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면서 협상 도구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U 집행위는 LNG뿐만 아니라 군사 장비, 농산물 수입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라가르드 총재는 "순수한 보복 전략보다는 수표책 전략이 더 나은 시나리오"라고 평가했다.
이어 "반대 상황은 아무 승자도 없는 맞대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기업이 EU 자금으로 공동 군사 조달을 지원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FT는 미국 기업이 군사 조달 이니셔티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고 전했다.
대(對)중국 정책을 놓고서도 브뤼셀과 워싱턴DC 소통이 더욱 긴밀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라가르드 총재는 미국 우선주의를 향한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MAGA)'는 제안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글로벌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데 어떻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중국산 덤핑도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산 제품에 최대 60% 관세를 물리면 중국 기업들이 '운송 변경(Rerouting)' 전략을 펼칠 수 있다는 경고다.
라가르드 총재는 "중국산 제품이 미국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면 유럽에 올 것"이라며 "주의 깊게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다만 관세 인상이 해법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중국산 전기차(EV)처럼 유럽이 관세를 인상할 위험이 있다"며 "인상은 해결책이 아니며 적합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성승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