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식포럼] 크리스 밀러 “반도체, 화폐 같은 중요성 갖는 시대 왔다”

‘칩워’ 저자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
세계지식포럼 ‘칩 워 2.0’ 세션 구름 관중

“TSMC, ASML 등 기업이 갖는 기술 우위,
시장 넘어 국가경쟁력 결정하는 중요 가치”

“반도체 둘러싼 국가 간 경쟁 심화로
중국의 반도체 자립 목표 쉽지 않을 것”

“자율주행·위성분석 등 군사력도 좌우”

◆ 세계지식포럼 ◆
세계지식포럼 개막 이틀째인 10일 세계적 베스트셀러 ‘칩워’의 저자인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가 ‘칩워 2.0’ 세션에서 연사로 나와 발표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중국과 미국이 반도체를 넘어 클라우드 컴퓨팅과 인공지능(AI) 모델까지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의 극심한 정치화에 대비해야 한다.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는 10일 매일경제 주최로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 ‘칩 워 2.0: 반도체 패권을 위한 글로벌 전투’ 세션에서 “AI시스템을 구성하는 반도체 칩은 화폐단위 같은 중요성을 가지게 됐다”며 이 같이 강조했다.


대만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 네덜란드의 ASML 등 반도체 기술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가진 기업은 단순한 시장 내 경쟁 우위를 넘어 국가 간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적 가치로 확장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밀러 교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칩 워’의 저자이자 국제정치, 경제, 기술 분야의 전문가다.


그는 AI 기술의 부상으로 전세계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더 높은 품질의 반도체를 확보하기 위한 사투를 벌일 것이라고 봤다.


밀러 교수는 “전형적인 반도체는 미국에서 생산된 소프트웨어로 설계되고 일본의 화학 물질과 재료에 의존해 네덜란드의 제조 장비로 생산된다”며 “전세계적으로 한 국가에서만 생산되는 칩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산업은 그 어떤 산업보다 글로벌화돼있고 이를 이끄는 미국과 중국 간 지정학적 갈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산업이 세계적인 공급망을 형성하면서 이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최첨단 반도체 칩에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미래도 담보된다는 것을 알게 된 정부들이 반도체 패권 전투에 나서고 있다”며 “전세계 유수 IT기업 뿐만 아니라 정부 간의 경쟁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밀러 교수는 엔비디아를 예로 들며 한 기업의 독점 체제는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진 현 국제 정세에서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엔비디아의 높은 가격도 문제지만 단일 공급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며 “아마존, 메타,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IT 기업도 자체 AI 프로세서를 구축하려 나섰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이 최근 반도체 기술 자립을 목표로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면서 전세계 무역 흐름이 바뀔 수도 있다고 전망도 내놨다.


밀러 교수는 “중국은 향후 몇 년 동안 중국의 컴퓨팅 파워를 50% 증가시키겠다는 목표를 천명했다”며 “반면 미국은 반도체 칩이 중국이 아닌 우방국에게 먼저 공급되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지만 반도체 산업에선 놀라울 정도로 작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매년 석유 수입액만큼 많은 돈을 반도체 수입에 쓰고 있다”고 했다.


밀러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한국과 대만 등 인근 아시아 국가들이 반도체 산업으로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한 것을 목격하며 이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시진핑은 반도체 공급망의 해외 수입을 줄이고 국내에서 더 많은 생산을 하고자 한다”며 “다만 반도체 생산을 모두 자립하기 위해선 엄청나게 많은 자본 지출과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다”고 환기시켰다.


그러면서 “중국은 2018년부터 네덜란드의 ASML의 최첨단 기계 등을 중국으로 이전하는 것을 불법으로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 같은 독점 기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의 반도체 자급자족은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도체와 AI를 둘러싼 패권은 각 국의 군사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밀러 교수는 “미래의 군사력은 함대가 몇 개인지 전통적인 기준에 끝나지 않고 AI 기반의 군사력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용된 드론 무기와 같이 AI 자율주행 서비스가 차세대 군사시스템에 적용되면서 실제 작전에도 투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자율주행 무기와 위성 정보 분석에도 막대한 컴퓨팅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도체 칩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이날 밀러 교수 세션에는 제공된 좌석을 크게 초과하는 방청객이 몰려와 반도체 시장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밀러 교수는 미국 터프츠대학교 국제역사학부 겸임 교수이자 러시아·유라시아 프로그램 공동책임자이며, 미국 기업 연구소(AEI)의 객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한 후 예일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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