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광암은 꿈속의 유토피아
자운영 보드라운 융단도 꿈에서나 펼쳐볼 뿐
이제 잠 깨고 되찾아 살고 싶네
먼 옛날 소년처럼 그 옛날 소녀처럼
냇가에서 대방구 잡고 번덕지에서 소 뜯기며
나 여기서 살고 싶네
(현의송의 자작시 ‘유토피아 내 고향’에서 발췌)
“나라의 독립은 투쟁으로 쟁취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마을은 한 번 파괴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마을은 인간의 존엄성, 구성원의 화합, 아름다운 문화를 갖는 높은 수준의 삶을 의미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마을’은 말이 있는 곳 즉 말이 소통되고 대화가 있는 곳이 마을이다. 중국의 촌(村)은
나무가 질서 있게 서있는 의미를 내포한다. 일본은 마을을 무라라고 한다. 무라(村)은 무리 지어 산다는 뜻에서 ‘무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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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광암마을, 자작시(유튜피아 내 고향) 비 앞에선 필자 |
고향 마을을 찾을 때마다 지역 주민의 고령화로 활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하다.
고령자 비율이 50%를 넘으면 마을의 공동체적 삶이 불가능해지고 마을로서의 기능이 상실된다. 사람이 떠나면 마을 생태계가 파괴되고 편의시설과 생활용수의 확보가 어려워지며 마을이 소멸되어 간다.
농산촌 지역의 경관이 아름다운 나라가 품격 높은 국가로 불린다. 농산촌 마을의 유지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시 소비자는 물론 국가의 장래가 걸린 중대한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품격 높은 국가가 되기 위해서도 농산촌 마을은 유지되어야 한다.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도시 이웃 간의 알콩달콩 고주알 미주알 다 털어놓고 부대끼며 사는 공동체 정신으로 함께 사는 삶의 이야기다. 이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국민의 밑바닥에 있는 원초적인 희망과 바람이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과 같이 물질적 풍요는 있으나 알콩달콩한 맛이 없는 삭막한 삶보다는 물질의 풍요는 없어도 부대끼며 사는 인정이 있던 마을의 공동체적 삶이 더 그리운 것이다. 인도의 간디가 갈망하던 국가보다 더 중요시하는 마을도 바로 이런 마을이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정과 의리를 강조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마을 중심으로 두레 품앗이 등의 문화가 발달했다.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지 않고 다 함께 인격적으로 대접하는 품앗이나 두레는 얼마나 인간적인가 말이다.
우리 전통의 공동체 문화의식 계승이 절실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공동체 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공동체 지수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웃이나 친구 등 사회적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다. 젊은이들의 행복지수가 최하위권인 이유도 공동체 지수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을의 자치는 민주주의의 작은 정치, 작은 경제, 작은 복지의 기초다. 마을이 건강하면 그 국가의 정치도 경제도 복지도 건강하다.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고 농산촌의 경관과 자연환경을 유지하며 품격 높은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그 기초가 되는 마을들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북미의 원주민 아로쿼이족은 마을의 작은 나무 한 그루를 베어야 하거나 마을에 흐르는 조그마한 개울을 메꾸려고 할 때도 즉흥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이 마을의 7세대 후 즉 2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해보고, 마을 주민 모두의 의사를 물어 필요 없다고 판단되어야 비로소 결정한다.
마을의 모든 자연은 지금 살고 있는 주민만의 것이 아니고 선조로부터 물려받았으며 이를 후대에 전해주어야 하는 문화유산으로 인정해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무 한 그루 뿐만 아니라 수천 년 이어온 농업용 도랑과 고인돌, 미륵 등 문화유산을 진정 미래의 후손을 위해 제대로 보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늦음 감이 있으나 정부나 정치권에서 농어촌 지역 소멸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대처하기 위해 상당한 국가예산(1년에 1조 원, 10년간 10조 원)을 책정했다. 이제 막 2022년도 지자체별 사업 예산을 할당했고 지자체는 주어진 예산으로 지역 소멸 대응을 위한 사업에 착수하려고 하는 단계다.
내 고향 전남도가 22개 지자체 중 16개가 지역 소멸 위험지역으로 선정되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예산(3,080억 원)을 확보했다는 것을 보니 전남이 지역 소멸이 가장 심각한 지역이라는 것을 인증받은 것 같아 씁쓸하고 서글픔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지자체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국가 예산을 확보하면 우선 길 내고 건물 짓고, 센터나 문화원 등 차기 선거를 위한 보여주기식 토건사업으로 쓰곤 했는데, 모처럼의 지역 소멸 대응 기금마저 똑같이 쓰이고 만다면 우리는 고향과 마을의 참담한 지역 몰락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지자체 관계자들은 가장 많은 국비를 확보하기 위해 전문 TF를 구성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이제는 확보된 예산으로 지자체별 특성에 맞는, 실질적으로 지역 활성화와 현지 정주민의 이탈 방지, 지역과 연결고리가 되는 관계인 확대 그리고 체류형 관광객인 바람의 인구 유입을 위한 밀착형 사업에 올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역 소멸 대응을 위한 사업계획서가 제출된 후에 지방자치 선거가 실시되며 지자체장이나 시·군 의원들이 교체된 지역에서는 많은 문제점들이 도출되고 있다고들 한다.
새로 당선된 지자체장들이 이미 입안된 사업들을 원천적으로 재검토하려 하거나, 비교적 지역에 바람직한 사업안인데도 전임자들의 업적을 지우고자 하는 생각으로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려 한다면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존폐가 걸린 지역소멸 대응에 대해서 지자체장의 선거를 위한 주민 복지향상이나 지역민들의 인기유지를 위한 보여주기식 사업이 아닌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자체별 특화된 콘텐츠개발과 획기적인 발상전환이 최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지자체가 주도하는 사업형식이긴 하지만 지역창생을 위한 지역주민과 단체는 물론 농협, 수협, 축협, 한국농어촌공사, 농촌진흥청 등 유관기관과의 폭넓은 대화를 통해 지혜와 아이디어를 모으고 최고의 사업이 되도록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 마을, 우리 고향, 우리 농어촌을 지켜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사업이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광암마을’
이곳이 언제까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줄 수 있을른지, 30년?, 50년?, 100년?
다행히 새롭게 영암군 지자체장에 당선된 우승희(禹承熙) 군수는 선거공약과 당선 인사에서도 영암군의 지방 소멸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선택 했다니, 광암마을이 당분간은 고향마을로 남아 있어줄 것 같아 다행이다.
[현의송 한·일 농업농촌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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