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방공 벙커에 목주 전신줄까지…120년 역사의 흔적 개방하는 용산공원

1950년대 지어진 미군 장군 숙소. 빨간 지붕과 이를 둘러싼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사진 제공 = 국토교통부]

지난 7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의 남서쪽 모서리에 위치한 14번 게이트. 지하철 신용산역에서 100여미터 거리에 있는 이곳은 오는 10일 시험 개방되는 용산공원의 방문객들이 공원에 첫발을 내딛는 지점이다.


120년만에 일반에 공개되는 용산공원은 14번 게이트를 지나는 순간부터 역사의 흔적이 쉽게 한눈에 들어온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사령부의 주 출입문이었던 14번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맞닥뜨리게 되는 한 낡은 잿빛의 건물은 시대별로 일본군의 방공작전용 벙커(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육군본부(1949년 7월~한국전쟁 발발 전)로 사용됐고, 한국전쟁때는 북한군, 주한미군이 들어선 이후엔 미군의 군사시설로 사용되며 4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앞으로 용산공원이 정식으로 개방되면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안내센터로 또다시 변모할 예정이다.


용산공원 내부 곳곳에는 조선시대 석인(石人)상이 곳곳에 놓여져있다.

[사진 제공 = 국토교통부]

14번 게이트를 지나 초입에는 미군 장군들이 숙소로 사용했던 부지가 나온다.

이곳 건물들은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로 이주하기 전 최근까지 미군이 사용하던 숙소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오키나와에 있던 미7사단이 패망한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항복 접수를 위해 주둔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곳곳에 늘어서있는 장군숙소들을 볼 수 있는 도로엔 푸른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양 옆으로 줄지어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알려주듯 나무 기둥 곳곳엔 옹이가 눈에 띄었다.

개중에는 100년을 넘게 이곳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도 있었다.

도로를 따라 세워져있는 목주(나무기둥) 전신줄에서도 세월의 흔적을 역력히 느낄 수 있다.

미군이 110볼트 전원을 사용하기 위해 50년대에 세운 목재 기둥의 전신줄로, 현재는 220볼트용 콘크리트 전봇대와 나란히 세워져있는 모습이다.


스포츠필드에선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舊 국방부 청사)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박형기 기자]

플라타너스 나무길 옆으로 듬성듬성 지어져 있는 장군숙소도 고즈넉한 이국적 풍경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1950년대 지어진 장군숙소들은 현재 미국 본토에서도 보기 힘든 구조다.

나지막한 높이에 빨간 지붕으로 덮인 숙소 한동 한동엔 벽돌로 된 굴뚝이 솟아나있다.

길을 따라 중간 중간 끊어진 돌담(축대)도 눈에 띈다.

해설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지어진 마름모의 일본식 석축"이라고 설명했다.

도로 곳곳에는 조선시대 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들이 놓여있었다.

미군기지, 그 이전엔 일본군 병영이었던 이곳이 한때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길가에 놓여 있는 소화전. 미국 본토에서 사용하는 소화전으로 옛 미국 소방관 모자의 모양을 띄고 있다.

[사진 제공 = 국토교통부]

플라타너스 나무길을 지나 용산기지 사우스포스트(이태원로 남쪽 부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10군단로(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10군단의 이름을 딴 도로)를 걷다보면 스포츠필드가 나온다.

드넓은 잔디구장이 여럿 들어서 있는 스포츠필드를 우리 정부는 '바람정원'으로 명명했다.

이곳에서 나눠주는 바람개비에 관람객들이 소원을 적어 꽂아놓으면 향후 수만개의 바람개비가 푸르른 잔디밭을 하얗게 수놓을 전망이다.


이곳은 미군들의 스포츠 활동을 위한 시설이었으나 과거 1960년대 한때엔 냉난방 실내 운동시설이 전무했던 한국의 운동선수들이 훈련장소로 쓰기도 했다.

그중에는 1967년 세계여자농구선수권에서 한국 구기종목 사상 처음 결승에 진출하며 '프라하의 기적'을 일궈낸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舊 국방부 청사)의 남측구역이기도 한 이곳에서는 시범개방기간 동안 15분마다 40명(선착순)까지 대통령실 앞뜰에 입장할 수 있다.

헬기와 특수 차량 등 대통령 경호장비도 관람 가능하다.


110볼트용 목주(나무기둥) 전봇대와 220볼트용 콘크리트 전봇대가 나란히 서있는 모습 [사진 제공 = 국토교통부]
용산공원은 10일부터 열흘간 일반 국민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시범개방한다.

열흘간 매일 2500명을 선착순으로 접수받는데 날마다 매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시범개방 기간 동안 접수한 방문객들의 의견을 모아 9월부터 임시개방을 할 예정이다.

임시개방 기간엔 인원과 시간제한을 따로 두지 않을 계획이다.


한편 용산공원 부지의 토양오염과 이에 대한 관람객 인체 유해성 논란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현장을 찾은 김복환 국토교통부 용산공원추진단장은 "이번 시범개방 기간동안 관람을 오시는 국민 여러분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관람객 동선, 개방범위·시간 등을 관람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했다"고 말했다.


시범개방 부지 곳곳에는 관람객들이 건의사항을 엽서에 써 제출할 수 있는 빨간색 우체통들이 놓여 있다.

이를 통해 접수한 의견은 9월 임시개방에 반영된다.

[사진 제공 = 국토교통부]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사우스포스트 북측에 있는 학교부지에서 일부 검출된 사실에 대해서는 "25년간 매달 이곳을 방문하는 동안 굳이 매번 땅속에 묻혀있는 다이옥신 옆에 인접해있다고 가정할 경우, 1만명중 3명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질 정도의 소량"이라며 인체에 유해하다는 일각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다이옥신이 검출된 곳은 완전한 정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울타리를 쳐 관람객들의 출입을 막을 것 "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오염된 토양이 있는 부지를 콘크리트 또는 잔디로 덮는 피복조치와 함께 토양정화법 중 하나인 SVE(토양증기추출·파이프를 활용한 강제진공흡입) 작업으로 오염 저감조치를 실시할 방침이다.

김 단장은 "오염 저감조치를 끝낼 9월에는 시범개방 부지(10만㎡)보다 더 많은 약 40㎡부지가 일반에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범 개방 부지는 신용산역에서 시작해 장군숙소와 대통령실 남측 구역을 지나 스포츠필드(국립중앙박물관 북측)에 이르는 직선거리 약 1.1km의 공간이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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