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은 형제복지원 피해자
대법원이 오늘(11일) 형제복지원 사건의 무죄 판결을 파기해달라는 비상상고를 기각했지만, 이 사건을 국가가 주도한 인권유린 사건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는 대법원이 사실상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기각 판결과 무관하게 이번 판결이 피해자 보상과 명예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대법원 2부는 이날 형제복지원 박인근 전 원장의 특수감금 무죄 판결을 파기해달라는 검찰총장의 비상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989년 당시 특수감금 무죄 판결은 부랑인을 마음대로 단속할 수 있도록 한 내무부 훈령과 훈령에 따른 행위는 처벌할 수 없도록 한 형법 20조가 근거가 됐습니다.

검찰은 내무부 훈령 자체가 위헌·무효이기에 법 적용에 오류가 있다고 보고 대법원에 무죄 판결 파기를 요구하는 비상상고장을 냈습니다.

비상상고는 '사건의 심판에 법령에 위반한 때'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법이 정한 비상상고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무죄 판결은 내무부 훈령이 아닌 형법 20조를 근거로 해 법 적용에 문제가 없다고 봤습니다.

내무부 훈령은 판결의 직접적 근거가 아니어서 비상상고 사유인 법령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날 법정에 모인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기각 판결 직후 오열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박준영 변호사도 "비상상고를 통해 뭔가 큰 변화를 기대하셨을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정말 죄송한 마음"이라고 밝혔습니다.

비록 검찰의 비상상고는 기각됐지만, 대법원이 판시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재판부는 기각 판결을 내리면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핵심은 "헌법의 최고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비상상고 기각이 형제복지원 사건의 무죄 판결을 재확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피해자·유가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정부의 적절한 조치로 아픔이 치유돼 사회 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며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을 주문했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진실 규명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는 점도 명시했습니다.

대법원이 법리적 이유로 무죄 판결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점을 부각한데 이어 조직적 인권유린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셈입니다.

이 같은 대법원의 판시는 국가 배상 재판에서 중요 쟁점 중 하나인 소멸시효 판단 과정에서 피해자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관측입니다.

박 변호사는 "대법원은 이번 사건을 국가기관이 주도한 대규모 인권유린 사건으로 봤다"며 "주문은 기각이지만 기각에 이르는 과정에서 밝힌 이유가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습니다.

[ 이태준 인턴기자 / taejun9503@m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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