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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낀 볼리비아…`좌파·부정선거 대통령` 물러간 자리에 `극우·종교 우선주의` 임시대통령
기사입력 2019-11-1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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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니네 아녜스 임시 대통령령에 따라 `형사 기소 면제권`을 받고 15일(현지시간) 수도 라파스에서 시위대 진압에 나선 볼리비아 군인들. [AP = 연합뉴스]
대통령이 사표를 내고 해외로 떠난 볼리비아에서 '임시 대통령'이 석연치 않은 움직임을 보여 관심을 사고 있다.

독실한 종교인인 헤아니네 아녜스 임시 대통령(52)이 인구 다수를 이루는 원주민 시위대를 폭력 진압해 사상자를 양산하고, 본연의 임무를 넘어 외교정책까지 손대고 있다는 국내외 언론 지적이 나온다.

아녜스 임시 대통령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정족수 미달인 의회에서 스스로 헌법상 임시 대통령임을 선언하고 야권 지지를 받아 임기를 시작한 인물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스스로 임시대통령임을 선언하고 임기를 시작한 헤아니네 아녜스 볼리비아 임시 대통령. [로이터 = 연합뉴스]
지난 주말 볼리비아 시위에서 에보 모랄레스 사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무장 군인·경찰과 충돌하던 중 사상자가 늘어났다고 라라손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17일 미주기구(OAS) 산하 미주인권위원회(IACHR) 추산에 따르면 코차밤바 일대에서 군·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면서 4명이 목숨을 잃는 등 주말 이틀 동안만 총 9명이 사망했고 수십명이 다쳤다.


볼리비아 정부가 공식 집계한 사망자 수는 5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실제 현장 피해는 더 큰 것으로 보인다.

ACHR은 지난달 20일 이후 본격화된 볼리비아 '부정 대선 정국' 시위 사태로 최소 23명이 죽고 715명이 다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코차밤바는 볼리비아 중서부에 자리한 곳으로 원주민 집중 거주 지역이다.

볼리비아 사상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인 모랄레스 사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다.

지난 15일 이후 시작된 주말 코차밤바 시위 폭력 진압은 아녜스 임시 대통령이 '공공 질서 회복'을 명목으로 보안군에 전화를 건 후에 이뤄졌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등이 전했다.

하루 전 날인 14일 아녜스 임시 대통령은 '공공 질서 유지에 나선 군·경에 대해 형사 기소를 면제한다'는 내용의 대통령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녜스 임시 대통령은 "가능한 빨리 대선을 치르는 것이 내 목표"라고 밝혔지만 자신의 종교인 카톨릭교를 강요하면서 내각 정부 구성·외교 정책 개편에 나서는 식으로 임시 대통령의 선을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 공개 행사에서는 카톨릭 의식에 따라 취임식을 치뤘고, 대통령 궁에 입성할 때는 "내가 가는 곳에 성경이 함께 한다.

나는 하느님의 여자"라고 선언한 바 있다.


헤아니네 아녜스 임시 대통령은 앞서 모랄레스 사임 대통령을 향해 "원주민 출신 모랄레스는 사악한 사람"이라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비난해왔다.

아녜스 임시 대통령은 이혼 후 두 아이를 키우며 정치 활동을 해왔다.

다만 정치적으로는 극우에 가까운 보수적 성향의 카톨릭 교도이다 보니 원주민 시민들의 경계심이 적지 않다는 것이 현지 언론보도다.

아녜스 임시 대통령은 앞서 모랄레스 사임 대통령을 향해 "원주민 출신 모랄레스는 사악한 사람"이라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비난해왔다.


볼리비아는 '세속 국가'다.

앞서 모랄레스 대통령 시절 대통령은 사회 통합을 위해 특정 종교를 국교로 삼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를 헌법에 규정했다.

볼리비아는 페루와 더불어 남미에서 원주민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토착 종교를 믿는 원주민이 볼리비아 인구의 60%(3분의 2)정도를 차지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이다.

식민지 시절 백인우월주의 분위기 속에 1952년 혁명 전까지는 인구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원주민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었다.


지난 주 모랄레스 사임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원주민 거주지인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원주민 시민들이 `다인종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욕타임스(NYT)]

앞서 모랄레스 퇴진 시위를 벌이며 '볼리비아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얻은 기업가 출신 루이스 페르난도 카마초 산타크루즈 시민위원장은 아녜스 임시 대통령의 종교 우선주의를 지지하면서 지난 13일 토착 원주민들을 겨냥해 "사탄들은 지금 당장 볼리비아에서 나가라"고 주장했다고 NYT가 전했다.

볼리비아 동부 산타크루즈는 백인 혼혈 중상층~부유층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고, 가난한 원주민들은 주로 코차밤바 등 서부 지역에 모여 산다.


종교 논란에 더해 아녜스 임시 대통령은 내각을 개편하면서 외교정책 변화를 예고했다.

임시 대통령 측근으로 새 외무장관직에 오른 카렌 롱가릭은 15일 "볼리비아 좌파 정권이 주도한 알바(Alba·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와 우나수르(Unasur·남미연합)을 탈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롱가릭 장관은 '정치 선동 혐의'를 이유로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파견한 외교관과 국제의료협력프로그램인 '더 많은 의사들' 등 일환으로 볼리비아에 파견된 쿠바 의료진 725명에 대해 즉시 추방 명령을 내렸다.


아녜스 임시 대통령은 극우 정치인인 아르투로 무리요 상원의원을 새 내무 장관으로 지정했다.

무리요 의원은 "모랄레스의 측근인 후안 라몬 킨타나 전 장관을 사냥할 것"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NYT는 지적했다.


한면 멕시코 망명 중인 모랄레스 사임대통령은 16일 BBC, 17일 EFE와 연달아 인터뷰를 통해 '볼리비아 내전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EFE인터뷰에서 "우리 나라가 내전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면서 "정말 두렵다"고 밝혔다.

이어 사임 대통령은 "준 군사조직과 마약카르텔·조직폭력단이 시위 정국 혼란에 개입해 야권·군부 쿠데타에 협력했다는 직접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서 "조직 폭력단이 가난한 시민들에게 최저임금인 120페소보다 많은 200~300페소를 줘가며 폭력 시위를 하도록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원주민들이 시위 정국에서 희생되고 제2시민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시민들이 원하면 나는 볼리비아로 돌아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볼리비아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7일 저녁 모랄레스 사임대통령 지지자들은 아녜스 임시 대통령의 '48시간 이내 사퇴'를 요구하면서 주요 도로 차단에 나섰다.

이들은 동부 농업지대~수도 라파즈를 잇는 주요 도로를 차단해 도시 생필품 공급을 차단하고 나섰다고 로이터통신이 17일 전했다.

도로 차단으로 가솔린·천연가스 공급 정유공장 접근도 막힌 상태다.


아녜스 임시 대통령은 이날 "매우 빠른 시기에 투명한 대선 실시 소식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그는 모랄레스 사임 대통령은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에 반발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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