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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미래] 지하철-일-잠
기사입력 2019-04-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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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metro)-불로(boulot)-도도(dodo). 반복적이고 무미건조한 현대인의 삶을 비유한 프랑스 유행어로, '지하철-일-잠'이라는 뜻이다.

출근하고 일하고 잠들고, 출근하고 일하고 잠들고, 출근하고 일하고 잠들고…. 루틴(routine)은 현대 문명의 특징이다.

인간의 삶에서 단 한 차례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배제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이를 아우라의 상실이라고 했다.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다른)은 '시적인 책'이다.

생물학자와 철학자가 함께 쓴 이 책은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조류의 감각'을 해방시킨다.

인간은 자연을 모방할 때에만 비로소 살아 있다는 느낌으로 살아갈 수 있고, 삶의 심층에 있는 놀랄 만큼 생동감 넘치고 깊이 음미할 만한 언어들을 만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 책에 따르면, 새들의 삶은 '루틴'과 거리가 멀다.

인간과 달리 새들은 언제나 새로운 하루를 살아간다.

자연에 순환은 있어도 반복은 없다.

오늘 핀 이 꽃은 어제의 그 꽃이 아니다.

오후에 부는 이 바람은 오전에 불었던 그 바람이 아니다.

자연은 단 한순간도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

철새들이 언제나 같은 장소에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는 이유는 비, 바람, 무더위, 안개, 폭풍우 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자연의 쉼 없는 변화를 수용해 감각을 진화시키지 못한다면, 새들은 길을 잃고, 아마도 목숨마저 잃어버릴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루틴한 삶이 죽음을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자연의 모든 일은 단 한 번만 일어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는 것을 무시하지 않아야 새들은 먹고 마시고 자고 이동하고 짝짓고 번식하는 일을 적시에 해낼 수 있다.

똑같은 삶을 한결같이 반복하려면 단 한순간도 똑같이 살아선 안 되는 역설, 이것이 생명의 진정한 비밀이다.

새들은 나날의 새로움을 만끽하면서 늘 자기로 돌아온다.

"모든 하루, 모든 시간, 모든 순간"에 "주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도 결코 자기 삶의 흐름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삶이 아니었던가. 무한히 새로우면서도, 늘 나로서 존재하는 삶 말이다.

'지하철-일-잠'은 우리를 똑같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아침엔 지루하고 우울한 얼굴로 차를 타고, 밤엔 피로하고 지친 얼굴로 돌아와 침대에 눕는 것이다.

인생에서 나만의 표정을 되찾고 싶다면, 루틴에서 벗어나 자연이 가져다주는 다양한 감각과 낯선 경험을 가득 채울 필요가 있다.

인간은 새로서 살 때에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바람이 분다.

창문을 열어라. 꽃이 피었다.

차에서 내려라.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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