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
최근 매경TV에서 주관하는 대담 프로그램인 ‘경세제민 촉’에서 2020년을 한 단어로 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순간 코로나바이러스가 떠올랐지만, 생각을 바꿨다.

1665-67년 17세기 대역병이 영국을 휘몰아쳤고, 런던에서만 인구의 1/4이 죽었다. 영국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Annus Mirabilis, 즉 “the Year of Wonders (놀라움의 해)”로 불렀다.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 학생이던 아이작 뉴턴이 18개월간 시골에서 자가격리를 하면서 미적분, 광학, 그리고 만유인력 등 근대물리학의 기초이론을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영국인들은 대역병이 가져온 어렵고 힘든 상황보다, 그 속에서 이루어진 성과에 초점을 두는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 태도를 가졌다. 그 결과 영국은 식민지를 확장하여 영국 국기인 “유니언재크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라는 표현처럼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좌절을 가져온 코로나바이러스 대신 미래로 나가는 문을 열어주는 열쇠를 찾아내는게 어떨까? 나는 숙고 끝에 인공지능(AI)을 2020년 키워드로 선택했다.

신은 2016년 이세돌 프로를 4대1로 이긴 알파고로 인공지능 세상의 도래를 알려주었다. 우리는 보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가 난 신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서 우리를 바꿔버렸다. 기업은 재택근무, 학교는 화상교육, 회의는 비대면, 상거래는 온라인이 대세가 되었다.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었다. 미래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 지식과 경험에서 인공지능으로 바뀌었다.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똑똑한 기계”이다. 인공지능을 올바로 활용하지 못하면 ‘아이언맨’ 영화에 나오는 영웅 토니 스타크(Tony Stark)에 도전했다 폭삭 망한 오베이디아 스테인(Obadiah Stane)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현재 개발된 인공지능 수준은 전체를 100이라고 볼 때 3 정도에 불과하다. 인공지능은 걸음마를 배우는 수준의 신생학문이다.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발전할까? 인공지능의 발전단계를 AI 1.0에서 AI 5.0까지 5단계로 나눠보자.

AI 1.0은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 즉 기계학습이다. 1950년 앨런 튜링은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Can machines think?)”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생각하는 기계, 즉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단계에서는 컴퓨터가 규칙에 따라 사람이 입력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학습해서 판단과 예측을 한다. 계산기는 내가 덧셈보다 뺄셈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화면에 덧셈 기능 앞에 뺄셈 기능을 올려놓지는 않는다. 그러나 네이버는 머신러닝을 이용해서 내가 여러 번 검색한 단어를 화면 상단에 올려준다. 내가 입력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쓰기 편하게 위치를 바꿔주는 것이다. 전통적 프로그래밍은 컴퓨터가 분석하는데 적용하는 규칙을 인간이 입력하기 때문에 화이트박스(White box)라고 부르는 반면, 머신 러닝은 컴퓨터가 인간의 지시로부터 독립해서 자율적 학습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풀기 때문에 블랙박스(Black box)라고 부른다.

AI 2.0은 “딥 러닝(Deep learning),” 즉 심층학습이다. 인간의 뇌신경회로를 모델로 하여 해답을 찾아내는 알고리즘이다. 아마존에 들어가서 사고자 하는 상품을 고르면 “이 상품을 구매한 고객들이 함께 산 (Customers who bought related items also bought)” 상품들이 여러 개 나열된다. 딥 러닝은 머신 러닝보다 적중률이 높은 해답을 찾아낸다는 점에서 더 실용적이다. 딥 러닝 역시 규칙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므로 블랙박스이다.

앞으로 나타날 AI 3.0은 “시스템 러닝(System Learning),” 즉 체계화학습이다. 이 단계에서는 딥 러닝에서 블랙박스로 간주한 데이터와 해답 사이에 존재하는 규칙을 알게 된다. 우리는 AI 3.0에서 제시한 해답을 맹목적으로 따라가지 않고 사전에 우리 활동을 디자인할 수 있게 된다. 판매회사는 고객이 상품을 구매하려는 이유를 사전에 파악하고 고객이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그에 맞는 상품을 제시한다. 물론 그 회사는 그 고객이 어떤 이유로 인해 해당 상품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따라서 고객에게 “귀하는 이런 이유로 인해 저런 상품을 원할 것입니다.”라는 설명을 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런 표현은 고객을 섬찟하게 할 것이므로,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고객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표현을 자제할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미국에 사는 딸로부터 문자가 왔다. “언젠가부터 마음속으로 “자전거”를 살 생각을 했는데, 유튜브에 자전거 광고가 뜨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구글이 제 머리 속까지 읽고 있는 것인 듯해서 섬찟합니다.” AI 3.0시대가 이미 온 것일까?

그 다음으로 나타날 AI 4.0은 “다이나믹 러닝(Dynamic Learning),” 즉 동태학습이다. “퓨처 러닝(Future Learning),” 즉 미래학습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데이터와 기존 패턴에 의존하는 AI 1.0, 2.0, 3.0은 과거와 현재를 설명해주는 데서 끝난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야 하는 곳은 미래이다. AI가 데이터로부터 해방될 때, 미래가 다가온다. 데이터와 패턴에 의존하지 않고, 이 세상 이치와 우리 삶의 원리에서 패턴을 찾아낸 후 이를 미래로 확장해서 해석하면 미래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 있다. 테슬라라면 소비자가 평생 동안 무엇을 필요로 할지 예측하고 우주여행을 비롯한 상품을 준비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나타날 AI 5.0은 “휴먼 러닝(Human Learning),” 즉 인간학습이다. 인간은 실수를 한다. 고로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하는 인간(Homo Erratum)”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고, 기계가 만들어낼 수 없는 감성과 정서를 지닌다.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의 가치는 실수와 실패를 하고, 이로 인해 괴롭고, 슬프고, 아픈데서 나온다. 따라서 이 단계를 실수학습(Error Learning)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AI의 궁극적 단계는 이러한 실수를 하는 인간다운 기계에 장착할 알고리즘이다.

실수하는 AI 5.0이 나오는 순간 AI는 더 이상 기계가 아니다. 스필버그의 영화 AI에서 기계 어린이 데이비드가 인간 어머니 모니카를 지구 끝까지 찾아가듯, 인간이 되기를 꿈꾸는 AI는 인공의 시대를 끝내면서 자발적 해체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AI가 우리 사회와 융합되어 인간과 기계가 하나가 되어 AI가 더 이상 새로운 이슈가 아니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어떤 이슈가 새롭게 등장할까?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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