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많이 찍어낸다…패스트패션 제왕 '쉬인'의 그림자 [허대식 교수의 비즈니스 이노베이션]

지난해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열렸던 중국 패스트 패션 기업 '쉬인'의 팝업 스토어 모습. 연합뉴스

중국의 울트라 패스트 패션 기업 쉬인이 2024년 매출 480억달러를 기록하며 스페인의 인디텍스(자라의 모기업)를 제치고 세계 1위에 등극했다.

2012년 온라인 전용 패션 리테일러로 창업한 지 불과 12년 만의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지난 6년간 매출이 20배 이상 급증했고, 현재 쉬인은 150개국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현재 기업가치는 약 660억달러로, 세계 5위의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된다.

월간 방문자가 2억명에 달하는 쉬인은 초거대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에 이어 패션 산업에서도 중국이 기존의 유럽·미국 선도 기업을 제치고 또 하나의 성공 방정식을 완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쉬인의 급성장은 팬데믹 이후 온라인 커머스 전반의 부상과 함께 이뤄졌다.

쉬인의 경쟁사 대비 30~40% 저렴한 가격, 연간 30만개에 달하는 제품 수, 2주 내 배송이라는 빠른 속도는 기존 패스트 패션 기업인 자라와 H&M을 압도했다.


쉬인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쉬양톈은 "모든 사람이 패션의 아름다움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며 패션을 공급 중심에서 수요 중심의 사업 모델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쉬인의 온디맨드(on-demand) 비즈니스 모델은 시장 반응을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하고 이를 기반으로 저렴하고 다양한 제품을 실시간 공급하는 디지털 기반의 고객 반응형 공급망 전략이다.


쉬인의 공급망은 압도적으로 다양한 신제품 개발에서 시작된다.

200여 명의 내부 디자이너와 수천 명의 외부 계약 디자이너, 구글 트렌드 파인더 등의 데이터에 기반해 매일 6000여 개의 디자인을 생산한다.

이 디자인은 광저우 패션 클러스터 내 5000여 개 중소 협력사로 보내져 100~200개 소량 단위로 시험 생산된다.

이후 온라인에서 고객 반응을 테스트해 본격 생산 여부를 결정한다.


쉬인의 디지털 생산센터에는 약 2000명이 근무하며 다양한 디지털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신제품에 대한 고객 수요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디자인 개발 후 7일 이내에 재고 보충 여부를 결정한다.

이 센터는 협력사의 생산 역량을 검토해 자동으로 생산업체를 배정하고, 추가 생산을 발주한다.

협력사의 98%는 쉬인의 클라우드 공급망 시스템에 연동돼 있어 주문을 자동 승인 또는 거절할 수 있다.

생산된 제품은 광저우 물류센터에 집하된 후 전 세계 고객에게 개별 배송된다.

결국 디자인 개발부터 고객 주문까지 최대 2주, 주문 이후 배송까지는 평균 1~2주가 소요된다.


약 30만개 신제품을 한 달 이내에 고객에게 배송할 수 있는 쉬인의 공급망 시스템은 쉬인의 디지털 역량과 30년 이상 축적된 광저우 패션 클러스터의 탄탄한 협력 구조 덕분이다.

경쟁사 대비 저렴한 가격 또한 저렴한 중국 협력사의 비용 구조, 오프라인 매장 부재, 재고통합관리 시스템, 미국 시장의 소액 관세 면세 혜택 등 복합적 요소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가격, 디자인 다양성, 속도 면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갖춘 쉬인이지만 최근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2023년 뉴욕 증시 상장을 추진했으나 미국 정치권의 반발로 무산됐다.

강제노동 의혹, 열악한 노동 환경, 소액 면세 조항의 악용 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후 쉬인은 런던 증시로 방향을 틀었지만, 여전히 신장 지역 공급망 노출 등 정치적 민감 사안으로 승인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광저우 판위구에 밀집돼 있는 쉬인 협력업체들의 주 75시간 장시간 노동, 비정규직 중심의 저임금 구조, 열악한 근무 환경은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왔다.

일부 제품에서는 법적 기준을 초과하는 납 성분이 검출됐으며, 과잉생산·과소비를 유도해 온실가스 배출을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거세다.

하루 6000여 개 디자인을 출시하는 과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저작권 침해 문제도 심각하다.

쉬인은 전담 조직을 통해 대응 중이지만 이미 글로벌 브랜드(닥터마틴·리바이스·랄프로렌 등)뿐만 아니라 개인 창작자들로부터도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쉬인을 세계 1위로 만든 반응형 공급망이 윤리적·사회적·환경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기업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쉬인의 전성시대는 끝난 것일까? 디지털 기반 반응형 공급망 전략은 패스트 패션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공급망의 투명성과 ESG 경영이 핵심이 돼야 한다.


하도급 업체의 아동 노동 논란으로 비판받았던 나이키는 지난 20년간 모든 제조업체의 이름과 위치를 매년 공개하고 있다.

H&M은 1·2차 협력업체 6000여 개 공장의 위치, 근로자 수, 여성 비율, 노조 여부, 친환경 인증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하도급 업체에서 발생한 연쇄 자살로 비판받은 애플도 전체 구매액의 98%를 차지하는 핵심 협력사 200여 개의 공장 위치 정보를 매년 공개하고 있다.


책임 있는 공급망의 첫걸음은 '투명성'이다.

공급망 정보를 외부에 공개함으로써 투자자·규제기관·시민사회가 함께 감시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쉬인이 고객의 신뢰, 지역사회의 존경, 직원들의 자부심을 얻는 '지속가능한 1위'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가격·디자인·속도만이 아닌 사회적·환경적 책임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공급망 경쟁력을 갖춰야 할 때다.




[허대식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