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불장에 초강수 … 수요 잡으려다 공급 흔들면 '도루묵' [이인화의 건축 길라잡이]

정부가 6억원 이상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는 초고강도 대출 규제를 시행하면서 서울 부동산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사진은 지난달 30일부터 입주가 시작된 서초메이플 자이. 이승환 기자


공급을 조이면 시장은 더 오른다.

지난달 27일 정부는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주택담보대출 규제 수위를 다시 높였다.

수도권의 대출한도는 6억원으로 제한됐고 6개월 내 실거주 전입 의무와 함께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도 전면 금지됐다.

대출 규제는 익숙하지만 이번 조치는 단순한 수요 억제를 넘어 공급 기반을 흔드는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주택 공급은 단순히 땅을 사고 짓는 과정이 아니다.

설계와 인허가, 분양 계획, 자금 조달, 착공, 준공, 입주까지 최소 5년에서 20년 이상 소요되는 복합적 생태계다.

이러한 주택 공급 시장 연결고리의 첫 관문이 금융, 특히 대출이다.

자금 흐름이 막히면 착공은 미뤄지고 분양은 지연되며 공급은 줄어든다.

지금의 규제는 실수요자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민간 건설사의 사업 계획에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신규 분양은 대출 규제와 부동산금융(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담으로 축소되거나 미뤄지고 있다.

정비사업은 보류되고 있으며 건설 착공도 2023년 이후 2년 연속 감소세다.

이처럼 공급 절벽의 전조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주택 공급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공급이 줄면 가격은 다시 오른다.

금리와 규제로 억눌린 수요가 잠시 멈추는 것일 뿐이다.

수요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다.

주택 공급은 늦고 수요가 살아 있는 시장에서 가격 하락은 단기에 그치고 반등은 빠르게 일어난다.

실제로 2017년 이후 주택 인허가 흐름은 이러한 정책 신호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2017년과 2018년은 연간 수도권 인허가 13만가구 수준을 기록했지만 2020년에는 7만1000가구로 급감했다.

2022년 일시적으로 반등했지만 2023년부터 다시 인허가 물량이 급격히 줄고 있으며 작년 상반기에도 감소세는 지속 중이다.


이러한 현상은 주택 경매 시장에도 분명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수도권 중심으로 경매 낙찰가율이 80%를 돌파하기 시작했고 올해 상반기엔 서울 주요 지역에서 90%를 넘는 사례가 속출했다.

입찰 경쟁률도 상승 중이며 투자자는 물론 무주택자도 경매에 관심을 보인다.

공급 위축은 현실이 됐다.


공급 절벽의 여파는 주택가격 대비 중위소득 비율(Price to Income Ratio·PIR)에도 반영된다.

지난해 기준 PIR은 서울 13배, 경기 7.4배, 인천 8배, 전국 평균 6.3배로 이는 중위소득 가구가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13년치 소득을 모아야 한다는 의미다.

실수요자가 집을 살 수 없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는 것이다.


주택 공급의 한 축을 담당해온 민간 다세대주택 시장은 최근 전세 사기 사태 이후 사실상 붕괴 상태에 가깝다.

전세 보증사고 급증 이후 금융기관들은 다세대·다가구 주택에 대한 대출을 기피하고 있고 중소 시공사는 PF 자체가 막히며 사업을 접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은 청년,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등 서민층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의 핵심 채널이었다.

전세 사기를 막기 위한 규제는 불가피했지만 동시에 이들이 설 수 있는 새로운 민간 다세대주택 공급 정책이 필요하다.

검증된 시공자 중심의 등록제 도입, 전세보증보험 연계, 공공금융 보증 시스템 등을 통해 신뢰 회복과 공급 재건이 병행돼야 한다.


또 정부는 공급 정책 수립 시 '새로운 신도시 구상'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신도시 구상에 앞서 기존 3기 신도시의 완성도가 현저히 낮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발표된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고양 창릉 등 3기 신도시는 대부분 토지 보상이 끝났지만 실제 착공은 지지부진하다.

일부 지구는 아직 기반 시설 계획도 확정되지 않았고 입주 시점은 2028년 이후로 예측된다.

공급 시차를 고려하면 지금부터라도 3기 신도시의 착공과 분양을 앞당기는 '속도전'이 필요하다.

새로운 용지를 찾는 일보다 이미 발표된 사업이 실제 공급으로 이어지도록 전방위 행정력을 투입해야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이번 규제는 단기 레버리지 투자를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유동성 있는 투자자에겐 절호의 기회다.

신규 공급이 막히면 기존 주택의 희소성이 커지고 규제 강도가 유지되면 하방경직성은 강화한다.

특히 강남·용산·판교처럼 수요가 집중된 핵심 지역은 실수요뿐 아니라 장기 보유형 투자자에게도 가치가 높아진다.

전세 안정성과 자산 보존성을 고려할 때 공급 부족 구간에서 매입한 자산은 향후 회복기에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결국 핵심은 정책의 우선순위다.

지금은 수요 억제보다 공급 기반의 회복이 시급한 시기다.

생애 최초 구입자와 청년층에게는 대출 규제의 문턱을 낮추고 민간 건설사에는 PF 보증과 금융 안정화를 제공해야 한다.

다세대주택 시장은 재건돼야 하며 3기 신도시는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안정'이라는 목표를 향한 구체적 실행 전략 없이는 불가능하다.


부동산 시장은 단기 규제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시장은 오히려 '공급이 부족하다는 신호'에 더 빠르게 반응한다.

가격을 낮추려면 공급을 늘려야 한다.

공급을 늘리려면 대출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대출은 조이고 공급은 풀자'가 아니라 '필요한 대출은 살리고 멈춘 공급은 다시 움직이게 하자'는 전략적 리셋이다.




[이인화 도원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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