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임차인 시설인데 내 책임이라고?" 말많고 탈많은 상가 원상복구 계약


"제가 설치한 것만 철거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서울 강남의 한 상가. A씨는 4년 전 권리금 3000만원을 주고 카페를 인수해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계속된 불경기로 임대료 맞추기조차 어려워지자 상가를 내놨다.

그래도 새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 채 결국 계약 종료일에 맞춰 자진 폐업하기로 했다.


권리금도 못 받고 나가게 된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비품 정리를 마쳤다.

그런데 계약 만료일에 보증금을 반환해주러 나온 임대인의 말은 예상 밖이었다.

"카페로 안 나가면 다른 업종이라도 맞춰야 하니 내부 시설 전부 철거하고 원상복구해 주세요."
억울했던 A씨는 항변했다.

"제가 설치한 것도 아닌데 왜 다 철거해야 하죠? 전 임차인이 해놓은 인테리어까지 제가 책임져야 하나요?" 임대인은 계약서상의 원상복구 특약을 근거로 제시했다.

"임차인은 퇴실 시 임대차 목적물을 원상복구하여 반환한다"는 계약서에 자주 등장하는 그 특약사항 한 줄로 인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철거비 분쟁이 발생한다.

특히 요즘처럼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권리금은커녕 투자한 인테리어 비용도 회수하지 못한 채 나가야 하는 임차인이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더욱 민감한 문제다.


임대인은 공간을 '본래의 상태'로 돌려받길 원한다.

특정 업종 맞춤 인테리어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기 어렵고 공실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물론 임차인은 임대차 종료 시 임대계약 당시 상태로 목적물을 원상복구해 반환해야 한다.

다만 이때의 원상복구 범위는 계약의 경위, 내용, 임대 당시의 상태, 임차인의 변경 사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안별로 판단한다.


문제는 전 임차인이 남기고 간 시설까지도 현 임차인이 철거해야 하느냐는 것인데 법원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아니다'이다.

"임차인은 자신이 설치한 시설만 철거하면 되고 전 임차인이 설치한 것까지 원상회복할 의무는 없다(대법원 1990.12.11. 선고 90다카12035)."
하지만 구체적인 판단은 '양수 범위'에 따라 달라진다.

임차인이 단순히 시설물만 넘겨받은 게 아니라 영업 전체를 포괄적으로 양수한 경우라면 책임 범위가 확대된다.

"전 임차인의 인테리어를 포함해 커피전문점 영업 전체를 양수한 경우 현 임차인은 해당 시설물까지 철거해야 한다(대법원 2019.1.31. 선고 2017다268142)."
이 사건에서 A씨는 전 임차인의 커피숍 운영을 그대로 넘겨받았고 시설도 그대로 사용했다.

대법원은 임차인이 종전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지급하고 기존의 영업을 양도받은 '포괄 양수'의 경우 종전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물도 원상복구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같은 권리금 계약이라도 인수 범위가 '영업 전체'인지 '시설만'인지에 따라 철거 범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무엇을 넘겨받았고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를 계약 단계에서 명확히 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가장 확실한 분쟁 예방책이다.


우선 양수 범위 명시가 필요하다.

양수 계약서에 '시설만 인수' '영업 전체 인수' 등으로 인수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둬야 한다.

둘째로 원상복구 조항 구체화다.

임대차 계약서에 "임차인이 설치한 부분만 원상복구 한다" 또는 "전 임차인 시설물까지 포함한다" 등으로 책임 범위를 명확히 작성해야 한다.

마지막은 인수 당시 상태를 증거로 남기는 일이다.

입증 책임은 대부분 임차인에게 있다.

인수 시점의 상태를 사진·영상 등을 촬영해 기록 보관해두는 게 중요하다.


따라서 만약 종전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까지 철거하고 싶지 않다면 임대차 계약 체결 시 다음 같은 내용을 특약으로 추가해야 한다.

"임차인은 종전 임차인으로부터 영업을 양도받았더라도 종전 임차인이 설치한 영업시설에 대해서는 원상복구할 의무가 없다.

"
모든 계약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또한 사소한 문구 하나로 수천만 원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복잡한 과정에서 책임 소재를 꼼꼼히 따지고 임대인과 임차인 간 균형 있는 중재를 해줄 수 있는 전문 공인중개사를 통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양정아 공인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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