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대출 규제 ◆
정부가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대상에 기존 분양단지를 포함하는 초강수를 둔 이유는 청약시장을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청약시장에 들어와 '제3자의 레버리지'로 차익을 내는 행위를 막겠다는 목적이다.
29일 금융당국 관계자도 "돈이 부족해 세입자 보증금으로 잔금을 내는데 이걸로도 부족해 전세대출까지 활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계약금만 들고 이익을 내기 위해 청약시장에 뛰어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젠 끊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계약금은 전체 주택 가격의 20%, 중도금은 60% 내에서 사업시행자가 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계약금 10%, 중도금 60%, 잔금 30%' 비율로 나눠 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청약 대기자 가운데 계약금과 중도금 일부만 가지고 분양시장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서울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 아파트의 전용면적 84㎡ 분양가격은 약 24억원이다.
분양 당시 같은 평형 전세 시세는 16억원 선이었다.
자기 자본이 8억원가량(계약금+중도금 일부)만 있으면 청약에 도전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구조를 활용해 당시 기준으로 20억원에 달하는 시세 차익을 내기 위해 청약 대기자들이 엄청나게 몰렸다.
수분양자들은 대부분 청약 당첨과 계약금 납입 후 자금조달 계획서를 작성한다.
계약자 중 일부는 세입자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겠다는 계획을 낸다.
하지만 정부의 '기습 대출 규제'에 1~2년 전 세웠던 자금조달 계획은 무용지물이 됐다.
올해 서울 대단지 아파트 입주를 앞둔 한 수분양자는 "2년 전 분양 시점엔 정부가 소유권 이전 전세대출을 금지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며 "이번 대출 규제로 분양 잔금을 내지 못하면 정부가 책임져줄 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올 하반기엔 메이플자이 외에도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구)와 용산 일대에 '로또 분양'이 다수 예정돼 있다.
우선 서초구 잠원동에서는 신반포21차 재건축인 '오티에르반포'가 분양될 예정이다.
서초동 신동아아파트 재건축('아크로 드 서초')도 일정을 잡고 있다.
송파구에선 미성·크로바를 재건축한 '잠실르엘'이 대기 중이다.
용산구에선 용산 '
아세아아파트' 재건축이 일반분양 일정을 저울질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대출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되고 세입자의 전세대출이 막히며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기도 쉽지 않아 '로또 분양'은 현금 부자에게만 유리한 게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금이 부족한 신혼부부나 청년층에게는 시세 차익이 수억 원 기대되는 로또 분양은 '그림의 떡'이 되는 셈이다.
분양을 앞둔 단지들도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 탓에 흥행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미 규제 시행 전부터 수요가 충분하다고 평가받는 서울조차 고분양가에 미분양이 발생하고 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강력한 대출 규제를 꺼내 이를 예상하지 못한 피해자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정부는 대출 규제가 시행된 지난 28일 이전 입주자 모집공고를 낸 분양 단지는 6억원 이상 잔금 대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중도금 대출이 잔금 대출로 전환될 때 6억원 제한이 적용되지만 '예외 규정'을 둔 셈이다.
직접 입주를 결정한 메이플자이, 청담르엘 등 수분양자들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또 금융당국은 대출 규제 대상에 중도금 대출은 완전히 제외할 방침이다.
이번 가계부채 관리 방안엔 수도권과 규제지역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하향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 5월부터 전세대출 보증 비율은 100%에서 90%로 한 차례 낮아졌는데 불과 두 달도 안 돼 이 비율을 수도권은 80%로 낮추기로 한 것이다.
전세대출 보증 비율이 낮아지면 그만큼 금융사들의 전세대출에 대한 리스크가 높아져 여신 심사가 더 깐깐해지게 된다.
세입자들이 전세대출을 받기가 더 어려워지는 셈이다.
[김유신 기자 / 손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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