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와 인터뷰하는 홍준표 후보. [한주형 기자]
학력고사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 셋과 동네 극장에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갱스터 무비였다는 것 말고는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내 잤으므로. 영화관에서 나온 후 넷 중 두 명이 코피를 흘렸다(코로 흘리는 그 코피 말이다). 극장에 석면이 있다고 의심해야 할 상황에서 친구 한 녀석이 “이래 재미없는 영화는 나서 첨이데이. 코피 나는 거 봐라” 하는 거 아닌가. 그 해석이 그럴듯해 ‘재미없는 영화 보느라 코피 터진 날’로 다들 기억하고 있다.

영화가 재미없으면 코피가 난다.


“재미있어 질까요?” 오는 대선이 한두 번이라도 쫄깃쫄깃한 느낌을 줄 수 있을지 누가 묻는다.

영화가 100분이면 10분 정도는 재미있을 의무가 있다.

영화표는 공짜가 아니니까. 나는 재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실제 그런 낌새가 있다.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은 이재명 세상이 되면 그가 황제가 될 것이라고 겁을 주고 있다.

전체주의, 히틀러 세상을 들먹이는 후보도 있다.

볼드모트를 두려워하는 해리포터 진영의 약체 마법사들 같다.

그들 중 이재명을 이겨본 이가 한명도 없다.

지기만 한 사람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이재명이 오면 큰일 난다’고 징징댄다.

짜증이 났는지 한 관객이 외친다.

‘쫄리면 뒈지시든가.’
“양.아.치.” 신문 인터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대한 평가를 묻자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가 이렇게 답했다.

부가 설명도 없다.

이재명에 대한 얘기가 거의 없는 걸로 봐서 ‘그 사람 얘기 묻지 말고 내 얘기 물으시오’ 했을 게 분명하다.

볼드모트를 호명하면 할수록 그쪽 세력만 커진다는 것을 홍은 알고 있다.

‘기억해라. 중요한 건 내 이름이다.

이재명 말고 홍준표.’ 뭐 이런 속셈이겠지.
홍은 영화의 장르를 바꿔놓고 있다.

겁에 질린 마법사들이 나오는 동화극에서 거친 사내들이 설치는 마카로니 서부극으로. 정통 미국 서부극에선 게리 쿠퍼나 존 웨인처럼 잘생기고 정의로운 영웅이 주인공이지만 마카로니 서부극은 악당 본위다.

홍준표를 좀 보라. 어디가 게리 쿠퍼 같나. 마카로니 서부극의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다 악당들이고 그중에서 특히 나쁜 악당과 인간적으로 정이 가는 악당이 있을 뿐이다.


1966년 나온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 the ugly)가 좋은 예인데 여기서 the good 배역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돈만 보고 뛰는 현상금 사기꾼이다.

the good는 ‘좋은 놈’ 보다는 ‘잘생긴 놈’의 의미로 봐야 한다.

리 밴 클리프가 연기한 the bad는 잔혹한 악당이다.

피도, 눈물도 없다.

셋 중에서 가장 개성이 강한 인물은 일라이 월라크가 맡은 the ugly, ‘못생긴 놈’이다.

멕시코 산적인 그는 셋 중 제일 못 생기고, 말이 빠르고, 익살스러우면서도 교활하고, 겁이 없고, 좌절로부터 회복력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잡초처럼 끈질기다.


영화 초반부를 지배하는 것은 the bad의 압도적 카리스마다.

명사수이고 머리가 잘 돌아갈뿐더러 얼음처럼 냉정하다.

누가 저자를 상대할까 싶은데 the ugly가 등장해 ‘그래봐야 양아치’라고 침을 툭 내뱉는다.

잔뜩 긴장한 관객이 킥 웃는다.

the bad와 the ugly 중에서 누가 더 악당인지도 불분명하다.

어쨌든 the ugly가 침을 뱉으며 등장하고부터 영화는 쫄깃쫄깃해지고 있다.

저 허세꾼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영화의 끝은 잘생긴 놈과 못생긴 놈, 그리고 나쁜 놈이 권총을 들고 펼치는 3각 결투다.

셋의 머릿속이 복잡하다.

어느 놈을 먼저 쏴야 할지, 두 놈 중에서 나를 먼저 쏠 놈은 누구일지. 홍준표는 복선을 깔듯 미리 말했다.

빅텐트! 이는 ‘편먹고 나쁜 놈부터 처리하자’며 잘생긴 놈을 꼬드기는 말이다.

황금을 사이좋게 나눠 갖자는 속삭임이다.

그런데 아직 잘생긴 놈은 등장하기 전이다.

놈이 총을 얼마나 잘 쏠지, 나쁜 놈에 대한 경계와 못생긴 놈에 대한 불신 중에서 어느 쪽을 더 혐오할지에 승부가 달려 있다.

영화는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노원명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픽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