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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91세의 여유재순(본명 유재순)작가가 서울 상암동 한 카페에서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
"처음엔 심심풀이로 그림 그리는 걸 시작했는데, 젊은 친구들이 좋아해주니까 기쁘네요."
아이패드를 활용해 꽃, 나무 등 자연 풍경을 주로 그리는 여유재순(본명 유재순) 작가는 1934년생이다.
만 91세의 고령자임에도 그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본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팬들과 소통도 활발히 하고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엔 약 1000개의 그림이 업로드돼 있다.
할머니의 따뜻한 감성이 가득 담긴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팔로어는 7만7000명에 달한다.
여유재순 작가는 최근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에게 그림은 대단한 인생의 철학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그림은 '평범한 일상을 담는 것'이다.
여유재순 작가는 "예술가들은 머리를 써서 감이 오는 걸 그리지만 나는 인터넷에 나오는 평범한, 좋은 이미지 사진을 보면서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밝혔다.
최근 여유재순 작가는
카카오와 협업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할머니 화가의 따뜻한 응원'을 주제로 그의 그림에 메시지를 담아 이모티콘으로 출시한 것. 여유재순 작가의 그림과 이모티콘을 보고 실제로 위로받은 청년과 중장년이 많다.
그의 SNS 계정엔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림을 보니 여행 가고 싶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여유재순 작가는 "우리 집(SNS 계정)에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드리는 게 삶의 기쁨"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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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재순 작가의 카카오톡 이모티콘 |
그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여유재순 작가는 "젊었을 땐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건축 일도 하고, 미싱 자수도 하고, 공장 운영도 해봤다"며 "최근엔 나이가 들고 관절이 아프고 몸 상태가 안 좋아지니까 '인터넷을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니어가 디지털 세계에 빠져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시도에 주변 사람들은 "미쳤냐" "그 나이에 뭣하러 고생하냐"며 면박을 줬다고 한다.
필명(여유재순)도 그의 디지털 세계 진입이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SNS 계정 가입 당시 성란에 여(女)를 적고, 이름에 유재순을 넣다 보니 실수로 만들어진 이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맨땅에 헤딩이었지만 작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책임이 있으면 해야 한다는 게 나의 인생 신조"라며 웃어 보였다.
그의 그림 여정도 디지털을 배우던 팬데믹 시기에 시작됐다.
모든 사회적 교류가 단절된 시기에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던 여유재순 작가에게 주민센터 직원이 "그림 한번 그려볼래요?"라고 제안한 게 계기가 됐다.
여유재순 작가는 "홀로 매장을 찾아가 아이패드를 구매한 후 강의를 보며 그림 그리는 법을 독학했다"고 전했다.
아이패드에 쌓인 수많은 그림을 보면서도 여유재순 작가는 아직 배고프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아, 이거 참 잘 그렸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도전의식이 있어 그런지 현재 자리에 만족을 잘 못한다"고 웃어 보였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시니어들에게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여유재순 작가는 "열심히, 양심껏 배우고 행동으로 실천하면 못 할 게 없다"며 "좋아서 시작한 일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하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여유재순 작가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5년 전 본인을 그림의 세계로 안내해준 주민센터 선생님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수차례 되뇌었다.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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