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어느 밤. 퇴근해서 집에 도착한 김씨는 우체부가 현관문에 붙여 놓은 쪽지를 발견했다.
S은행 여신관리부발 내용증명이며 부재로 인해 다시 방문한다는 메모였다.
김씨는 밤새 잠을 설쳤다.
S은행은 거래도 안 하고 대출도 받은 적 없는데 왜 내용증명을 보냈을까. 누구에게라도 내용증명은 불면증 효과가 있다.
다음 날 우체국에 들러 확인해보니 몇 개월 전 매입한 아파트에 대한 '사해행위 취소소송' 예고장이었다.
5개월 전에 전 세입자가 사는 아파트가 승계 매매(세입자 보증금을 끼고 차액만 지급한 후 소유권을 이전해오는 거래)로 접수됐다.
세입자를 들여보낼 때 수리도 잘 해놓은 상태인 데다 급매로 나와서 전세금을 제외하면 갭 투자금이 3500만원 선. 마침 그 세입자의 전세 만기일이 본인 집 전세 만기일과 엇비슷해 보이자 김씨는 쉽게 매수를 결정했다.
매매가를 조금 더 깎아주면 매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자, 매도인은 소유권을 2주 안에 이전해가는 조건으로 감액에 동의해 주었다.
그런데 소유권이전등기를 한 지 3개월 후에 꿈에도 들어본 적 없는 사해행위 취소 소송 예고장이 날아온 것이다.
내용증명서에는 매도인이 금융권에 상환해야 할 채무를 피할 목적으로 김씨와 통정한 후 소유권을 넘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 근거로는 △금융권의 채무를 상환하지 않아 법적 소송을 준비 중이었다는 점 △거래가가 시세보다 현저히 저렴한 점 △계약일로부터 소유권이전등기일까지가 불과 2주 이내로 평균보다 단기간인 점을 예로 들었다.
더불어 사해행위로 추정되므로 기간 내 입증자료를 들어 소명하지 않을 시 소유권을 되찾아오기 위한 소송이 제기될 수 있음을 예고하였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잘못하면 집을 빼앗기겠다는 두려움이 생긴 김씨는 중개사무소로 달려왔다.
사해행위 취소소송은 채권자가 채무자의 재산 처분 행위로 인해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한다고 판단할 때 해당 행위를 무효화시키기 위해 제기하는 민사소송이다.
주로 채무자가 고의로 재산을 타인에게 저가 매도하거나 무상으로 증여하여 채권자의 권리 실현을 방해하는 경우에 제기되는데, 성공할 경우 해당 법률행위는 무효가 되고 재산은 원래 상태로 복귀된다.
사해행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채무자의 재산 처분 행위 △채무자의 사해 의사( 채무자가 재산 처분으로 인해 채권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수익자의 악의(재산을 넘겨받은 제3자가 해당 재산 처분이 채권자를 해하는 것을 알고 있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여야 한다). 위 요건이 충족되면 채권자는 사해행위 취소 청구권을 행사하여 원상회복을 요구할 수 있다.
이처럼 사해행위 취소소송은 채권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중요한 법적 수단이므로, 채권자라면 필요한 경우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통해 자신의 법적 권리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김씨의 경우는 매매가가 시세보다 현저히 저렴하다는 점과 소유권이전등기가 단기간에 이뤄진 점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실제로는 제3자 간의 정당한 거래가 확실하므로 걱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사해행위 취소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할 의도를 가지고 재산을 처분하였다는 취소 원인 행위가 존재함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겁에 질리고 놀란 김씨를 안정시키고 함께 소명서를 작성했다.
핵심은 △해당 물건 매도인의 경제 사정에 대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었다.
집을 사고팔면서 상대방의 경제 사정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입자 승계 매매이므로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만 지급하면 되어서 매매가를 저렴하게 받는 대신 짧은 기간 내 잔금을 치르고 소유권이전등기를 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실제 소액 갭투자의 경우 잔금 시간을 길게 끌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계약 당시 등기부에는 근저당권 등 일체의 설정이 없이 아주 깨끗한 상태였다.
과다한 근저당이나 압류 등 제한물권이 없는 상태의 매물을 거래하면서 상대방의 사해행위를 의심할 근거가 없다.
[양정아 공인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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