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법 개정안 논란 ◆
12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토론회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2일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와 관련해 경영진에 대한 면책 필요성을 주장한 것은 최근 재계에서 불거진 반대 주장을 수렴해 관련 법 개정 과정에서 예상되는 걸림돌을 없애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날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세미나 축사에서 이 원장은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도 포함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 원장은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 및 모범회사법은 명시적으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규정하고 있다"며 "그 외 영국, 일본 등도 판례나 지침 등 연성규범을 통해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이날 금감원이 공개한 이사의 충실의무에 대한 해외 입법사례를 보면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은 이사의 충실의무와 그 위반에 따른 법적책임 대상에 회사와 주주를 병기해 의무를 위반할 경우 주주가 이사를 직접 제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 역시 회사법을 통해 이사에게 회사와 주주를 공정하게 대우할 의무를 부여하고, 주주 이익이 침해되는 경우 판례상 주주의 제소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일본의 경우 법조문에서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 대한 것으로 한정하나, 판례 및 해석론상 주주의 이익 보호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 참가한 정은정 금감원 법무실 국장도 "우리나라 법령상 일반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이사·지배주주에 의한 주주가치 훼손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사의 주주 보호의무가 부정되는 현행 법체계에서는 상법개정 등을 통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인정하는 것이 근본적 대책"이라고 밝혔다.



다만 상법 개정 시 집단소송이나 배임죄에 따른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가 큰 만큼, 면책수단인 '경영판단원칙' 관련 조항을 법 개정 시 함께 적용하는 보완책으로 이를 불식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날 이 원장이 언급한 경영판단원칙은 회사 이사나 임원들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다하고 권한 내에서 행위를 했다면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더라도 회사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이 같은 경영판단원칙이 상법에 명시된다면,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한다고 해도 기업경영에 큰 제약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 원장의 주장이다.

충실의무를 경영 내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된다.

정 국장은 "일반거래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이 충돌하는) 자본거래를 나눠서 충실의무 적용을 달리하는 걸 고려해 볼 수 있다"며 향후 법 개정 시 이 같은 내용이 반영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사 충실의무 관련 법 개정을 포함해 소액주주 이익 보호를 위한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됐다.

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일감 몰아주기,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등 지배주주가 거래 양측의 이해당사자가 되는 경우가 일반주주와의 이해충돌의 본질"이라며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반주주의 이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의사결정자에 대해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현승 고려대 교수는 소액주주 권한을 강화하는 대표 제도인 집중투표제와 '3%룰(정관을 변경할 때 대주주 의결권을 3%까지로 제한)'을 확대하는 한편 임원 보수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원 보수 공개 대상의 범위를 모든 등기임원으로 확대하거나 공개의무가 있는 보수 금액 기준을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가 보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나 교수는 "국민연금은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적극적 주주활동을 향한 기대를 모았지만 주주제안 2건과 공개서한 3건 외의 가시적 성과가 없다"고 설명했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주총회 관련 제도 개선을 통해 이사 선임 때 적용되는 주주권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연구위원은 "소액주주가 주총일을 알려면 공시 시스템에 수시로 들어가 확인해야 한다"며 "과도하게 집중된 주총 개최일을 분산하거나 소집 통지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26일에는 상장협, 코스닥협회,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배구조 개선 관련 세미나를 열고 상법 개정 등 최근 이슈에 대한 기업 측 주장을 공개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날 행사에도 참석해 기업 입장을 듣고 균형감 있게 사안을 다룰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성 기자 /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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