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발 뗀 우주강국 꿈 ◆
"누리호가 첫 시도에서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 발사체 사상 10번 만에 독자 기술로 만든 로켓을 발사하게 됐다는 건 큰 의미가 있습니다.

"
날카로운 눈빛을 가졌던 30대 초반 젊은 연구원은 이제 백발이 성성한 60대가 됐다.

한국에서 '발사체'라는 한 우물을 팠던 그의 젊은 시절은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1990년 첫 고체연료 로켓인 KSR-1을 개발했던 그는 2013년 나로호 발사 당시 발사 책임자로 발사지휘센터(MDC)에서 나로호가 하늘을 가르는 순간을 지켰다.

이번 누리호 발사 때는 발사관제센터(LCC)에서 발사 책임자 바로 옆에 앉았다.

나로호 때는 러시아인이 앉아 있던 자리다.

한국 발사체의 '역사'로 불리는 조광래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의 이야기다.

그는 "30년간 발사체를 개발했지만 늘 센터 안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로켓이 화염을 내뿜고 창공을 가르는 모습을 한번도 내 눈으로 본 적이 없다"며 "그래도 이 역사와 함께할 수 있어서 참 고맙다"고 밝혔다.


2013년 나로호 발사 현장에서 비행 정보를 보며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응하는 임무를 맡았던 고정환 박사(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본부장)는 누리호 발사 총책임자로 MDC에서 누리호 발사를 지켜봤다.

고정환 개발사업본부장은 "그야말로 제로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온 게 기적"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나로호 발사 당시 "얼떨떨하다, 믿기지 않는다"는 소감을 전했던 그는 이날 누리호 발사가 100% 성공하지 못했지만 "지난 10여 년간 발사체를 개발해오면서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우리가 다 이뤄왔다고 볼 수 있다"며 "우리 힘으로 만든 발사체로 발사 단계까지 온 것이 감격스럽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담담하게 말을 이어간 그는 "첫 발사는 말 그대로 비행시험이기 때문에 아직 개발 과정으로 보는 것이 맞는다"며 "궤도 안착에는 실패했지만 이륙부터 전체 시퀀스 중 상당수 단계까지는 검증한 셈이기 때문에 그만큼 소득을 얻고 한 단계 성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온전히 우리 힘으로 만든 발사체 누리호가 첫 시도에 성공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지만 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고 본부장은 "우주 개발은 실패를 통해 얻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사체는 큰 예산이 투입되는 작업이고 한 번의 실패가 큰 손해로 이어질 수 있어 성공을 향한 염원보다 부담이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고 본부장은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다 보니 늘 일정에 쫓기듯 개발해야 했는데 문제가 생기면 일정이 지연되고 거기에 대한 비판도 크기 때문에 솔직히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 부담감이 얼마나 컸던지 30년을 발사체 개발에 매달려 이 분야에서 최고의 베테랑으로 불렸던 조 전 원장마저도 공황장애라는 지병을 얻었을 정도다.


그렇게 힘들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로켓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연구에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이 과정을 '축적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시간이 쌓이면서 기술 축적과 경험 축적이 이뤄지고 이 결과는 첫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로 이어졌다.


조 전 원장은 "나로호와 누리호 사이 10년간 우리가 많은 경험을 해서 그런지 모르는 게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나로호 당시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오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 손으로 설계하고 만들고 조립해서 실험까지 마치고 나니 눈을 감으면 로켓이라는 것에 대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림이 그려진다"고 말했다.

고 본부장은 "발사라는 이정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부품이 제작 도중 깨지는 등 다양한 사고들이 수없이 일어났다"면서 "그럼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함께해준 연구원과 기업들의 노력이 쌓여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발사는 성공적으로 이뤄졌지만 궤도 안착에 실패해 결과적으로 미완의 성공이 됐다.

궤도 안착까지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새봄 기자 /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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