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이건희 회장 1주기 추모 인터뷰 ◆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진행된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35년간 함께 일했던 고(故)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경영 정수를 회고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지 오는 25일로 1년이 된다.

1987년 아버지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별세로 삼성그룹을 맡게 된 그는 1993년 신경영 선언과 이어진 디지털경영, 디자인경영 등을 통해 오늘의 삼성을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회장 생전에 가장 지근거리에서 일한 사람으로는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77)이 꼽힌다.

1966년 삼성그룹에 입사한 그는 1969년 삼성전자 창립멤버로 시작해 2008년 퇴임할 때까지 삼성전자를 키워낸 국내 전자 산업의 산증인이다.

삼성에서 일한 42년 가운데 35년을 이 회장과 손발을 맞춘 그는 이 회장이 생전 펼쳤던 경영철학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회장이 남긴 유산을 되돌아보고 한국 경제와 제조업이 나아갈 길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 윤 전 부회장의 사무실을 찾았다.

윤 전 부회장은 1995년 이 회장이 중국 베이징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일갈했던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는 말을 꺼내며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정치는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가 많았고, 정책도 반기업적이었는데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죽비 소리'다.

윤 전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삼성그룹 식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며 "계속해서 활동하셨으면 최근 진행되는 (삼성의 사법 리스크 등)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이건희 회장 1주기를 맞는 심정은.
▷이 회장 주변에서 오랜 기간 같이 일했기 때문에 과거의 희비애락이 너무도 되새겨지는 시간이다.

이 회장은 다방면으로 호기심이 많았고 집념, 열정, 통찰력이 뛰어났다.

이 회장이 두 살 연상에 불과하지만 업무 외에는 대화가 안 될 정도로 안목이 남달랐다.

1970년대 말 삼성전자 도쿄지점장으로 근무할 때 이 회장이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일본에 출장을 왔다.

출장을 와서는 저녁 때 도쿄 오쿠라 호텔로 불러 반도체, PC, VTR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했다.

당시 우리나라 전자 기술이 일본과 큰 격차가 났는데, 이 회장은 출장 때마다 일본 기술을 많이 배우고 일본 기술자와 고문을 많이 채용해 우리 것으로 만들라는 지시를 했다.

당시 노력이 지금의 삼성전자를 만든 초석이 됐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 회장의 말은.
▷이 회장은 삼성 경영진에게 "당신이 하는 사업(業)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했다.

각자가 맡고 있는 업의 개념과 핵심 경쟁력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에 맞게 일하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1980~1990년대 고금리 시기에 이 회장은 백화점 사업의 본질을 임대업으로 보기도 했다.

업의 본질을 꿰뚫는 이 회장은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하는 사람이었다.

'사물의 기본 이치를 연구해 사물을 꿰뚫어보며 지혜를 다듬어간다'는 뜻인데 이 회장을 수식하는 최고의 단어라고 생각한다.


―1993년 신경영 선언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회장이 1987년 삼성을 맡은 이후 같이 국내외 사업장을 다녔다.

그 당시 이 회장이 가장 불만을 가졌던 것은 '현실에 안주하는 태도'였다.

세탁기 뚜껑의 부품이 맞지 않아 칼로 깎아서 맞추는 것을 보고 대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경영 선언의 핵심은 변화와 혁신이다.

변화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이 회장이 "처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라는 극단적인 얘기까지 한 것은 그 정도로 삼성의 문제가 심각했고 변화가 절실하다는 간절함을 보여준 것이다.


―신경영 선언 후 비약적 발전을 돌아본다면.
▷이 회장은 평소에도 직원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신경영 선언을 하면서 경영진에게 그룹 이익이 1조원을 넘으면 직원들 월급을 지금보다 두 배로 올려주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당시 세전이익이 6000억원에도 못 미쳐 조(兆) 단위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1조원은 금세 달성했고 지금은 삼성전자 한 곳의 영업이익만 4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대가 됐다.

성과에 대한 보상도 당연히 이뤄졌다.

직원에 대한 처우는 삼성이 대한민국 톱클래스라고 생각한다.


―이 회장이 참고서로 삼았던 일본을 삼성이 넘어섰는데.
▷지난해 삼성전자의 매출은 236조원, 영업이익은 36조원을 기록했다.

유럽 지멘스나 미국 HP, 일본 소니 등을 제치고 삼성전자가 전기전자 업종에서 매출 1위가 된 것이 2000년대 중반이다.

이 순위를 지키기 위해 이 회장이 '초일류'를 선언한 것이고, 지금까지 단순한 1등을 넘어 압도적인 1등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이 회장이 떠나면서 다양한 사회공헌을 했다.


▷이 회장은 평소에도 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을 꿈꿨다.

기업이 많은 이익을 내서 세금도 많이 내는 것, 이익의 일부를 사회와 함께 공유하는 것은 이 회장의 기본 철학이다.

사람들이 이번에 이 회장의 미술품 2만3000점이 기증된 데에만 관심이 많은데, 생전에도 그는 재단 등을 설립해 우수 인재를 양성하고 다양한 형태의 기부금을 내왔다.

최근 삼성장학회(삼성이건희장학재단)가 활동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쉬움이 일기도 했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1944년 경북 영천 출생 △196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66년 삼성그룹 입사 △1977년 삼성전자 도쿄지점장 △1980년 삼성전자 TV사업부장 △1985년 삼성종합연구소장 △1992년 삼성전자 가전부문 사장 △1992년 삼성전기 사장 △1994년 삼성전관 사장 △1995년 삼성그룹 일본본사 사장 △1997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2000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2008년 삼성전자 상임고문
[이승훈 기자 /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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