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담다>비하인드는 김원경 PD와 아나운서 이담, 김수진 작가 등 제작진과 출연들이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촬영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여경래 셰프' 편에서는 여 셰프의 음식에 대한 철학과 오랜 내공을 들여다봅니다.
'중식 경력 50년 대가' 여경래 셰프는 깊이 있는 손맛과 섬세한 디테일로 한국 중식 대표 명장이다.
오랜 시간 주방에서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세계 중국요리협회 부회장, 한국 중식요리협회 회장을 맡으며 후배 양성과 중식의 세계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최근에는 요리 예능 프로그램에도 도전하며 명장의 품격을 보여주며, 자신보다 후배를 빛내는 태도로 깊은 감동을 남기기도 했다.
◇ 김수진 작가의 크레딧 쿠키 - 맛있는 깨달음
칼은 누가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강도가 칼을 들면 사람을 해하고, 외과의가 칼을 들면 사람을 살린다. 그리고 셰프가 칼을 들면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여경래 셰프는 칼판장 출신이다. 중식계에서 '전설의 칼잡이'로 통한다. 당대 최고의 중식 대가인 왕춘량 사부에게 사사 받은 실력자다.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중식에 입문했어요.화교였기에 직업을 선택할 여지가 많지 않았죠. 기술을 배우라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요리를 시작했는데, 그때 제 꿈이 칼판장이었죠."
도끼에 가까운 칼날에 힘줘서 찍어 내리면 뼈째 토막을 낼 수도 있는 중식도는 칼질법이 약 1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뼈와 살을 분리하는 발골부터 아기자기한 꽃장식까지 중식도 하나면 충분하다. 도끼 같은 칼을 커터 칼처럼 자유자재로 다루자니 얼마나 쉼 없는 연습이 필요했으랴! 이 능수능란한 칼질 못지않게 여경래 셰프가 오랜 시간 연습한 기술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웃음.
"3년 동안 웃는 연습을 했어요. 버스나 지하철에서, 음식을 만들다가도 하하하 웃어버렸어요. 그래서 제 별명이 또라이에요."
그는 내성적인 성격에 소심한 데다 대인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성공을 위해 달리기만 하는 자신과 달리 늘 웃으며 즐겁게 일하는 후배가 부러워 억지로 웃기 시작한 지 3년. 표정이 바뀌니 인상은 펴지고 성격이 달라지니 인생도 즐거워졌다.
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듯이, 마음 역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하다. 여경래 셰프가 전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깨달음이다.
◇ 이담의 뒷담; 뒷이야기를 담다 - RESPECT RECIPE 리스펙을 만드는 레시피
# 그 때나 지금이나
7년 전이었다. 부산에서 열린 국제수산무역 엑스포에서 열리는 쿠킹쇼 진행을 부탁받았다. 바로 여경례 셰프의 쿠킹쇼였다. 요리의 '요' 자도 모르지만, 워낙 유명하신 여경래 셰프는 알기에 바로 부산으로 달려갔다. 쿠킹쇼는 처음으로 진행해보는 터라 인터넷에서 쿠킹쇼도 찾아보고, 여경래 셰프에 대해서도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7년 후, 드디어<이야기를 담다>에 여경래 셰프를 모시게 됐다. 당시 넷플릭스의 요리 경연프로그램<흑백요리사>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있을 시기라 바쁘실 걸 알지만, 조심스레 연락을 드렸는데 반갑게 인사해주셨다.
여 셰프의 제자인 박은영 셰프가 한 방송에서 "여경래 셰프님은 인연이 닿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래서였을까? 감사하게도 흔쾌히<이야기를 담다>에 출연해 주셨고, 인터뷰 내내 하하 웃으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여경래 셰프는 7년 전 처음 뵀을 때도 시종일관 환하게 웃으셨다. '아재 개그의 달인'답게 당시 쿠킹쇼에서도 '아재 개그'를 선보이셨던 기억도 난다.
중식의 대가, 유명 셰프다. 중식은 유독 강도 높은 체력과 기술을 요하는지라, 중식 주방은 유난히 군기가 세다는 이야기가 있다. 16살 홀로 상경해 그런 주방에서 일하며 중식의 대가가 되셨으니, 무섭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해 가득한 선입견이었다. 되레 수더분해 보이셨다. 쇼를 진행할 때, 뭔가 부족한 상황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고 하하하 웃으시며 "괜찮다"고 하셨다.
여경래 셰프의 식당 직원들이 여 셰프에게 딱 하나 힘들어하는 건 '아재 개그'라고 한다. 아재 개그를 너무 자주 하셔서 힘들다는 건데… 아재 개그만이 직원들을 힘들게 한다는 건, 그만큼 직원들에게 좋은 셰프라는 것의 반증이기도 했다.
# 존경받는 셰프
지난해<흑백요리사>에 여경래 셰프가 나오자 모두가 놀랐고, 의아해했다. 요리 경연프로그램에 여경래 셰프가 나온다고 하면, 당연히 심사위원이겠지 했는데…경연 참가자로 나온 거다. 왜? 왜 경연에 나오셨을까?
"재밌을 것 같네요." 잠자고 있던 열정을 깨우는 계기를 갖고 싶으셨다고 했다.
그런데 해당 경연에서 '철가방요리사'로 나온 한참 후배인 임태훈 셰프와의 대결에서 탈락을 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여경래 셰프는 더 존경받게 됐다. 탈락하며 했던 말들, 보여줬던 태도 덕분이었다.
"이제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해야죠." 철가방요리사인 임태훈 셰프는 바로 여 셰프에게 감사와 존경의 큰절을 올렸다.
어떻게 탈락하는 순간에 그런 말을 하게 됐냐는 질문에 여 셰프는 그냥 평소 하는 생각을 말로 했을 뿐이라고 하셨다.
사실 여 셰프의 요리가 대단하다는 건 다들 안다. 이미 검증된 부분이다. 그는 한국 중식요리협회 회장이자 세계 중국요리협회의 부주석(부회장)이기도하고, 중국 정부에서 인정한 100대 중국요리 명인이다. 이제는 여경래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모두가 알게 된 셈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즐겁게 방송하셨다며 기분이 좋으시다고 했다.
그러면서 7년 전 함께 찍은 사
진도 보내주셨다. 그때도 지금과 같이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계셨다.
여경래 셰프는 웃으려 하다 보니 본인이 웃는 것과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사진만 봐도 하하하 셰프님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하하하 웃는 게 정말로 잘 어울리시는 분이다.
◇ 김원경 피디의 비하인드컷- 칼판장, 꿈의 조각을 다듬다
"아, 집에 갈 수 있다!"
여경래 셰프의 인터뷰 마지막 말이다. 한숨 같은 안도감이 느껴졌다. 녹화 내내 웃음과 즐거움이 가득했지만, 그 이면에는 힘든 시간이 숨겨져 있었던 것 같다.
"얼마 전에도 녹화 중단했어요. 오한이 나고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흑백요리사 탈락 소식에도 오히려 '이제 좀 쉴 수 있겠다' 싶었단다. 여경래 셰프가 되뇌이고 있다. 그의 목소리에 지친 기색이 묻어났다.
"일의 노예가 된 느낌이다. 일단은 쉬자. 한 템포만 쉬자."
주방을 책임지는 셰프, 중국요리 100대 명인, 프랑스 '라 리스트(La Liste) 1000'의 주인공.
그 화려한 업적 뒤에 숨겨진 부담과 고난이 얼마나 컸을까?
# 짬뽕도 못 만드는 주방장?
칼판장, 불판장, 면판장을 중식 주방의 삼총사라 한다. 칼로 빚어내는 요리만 백 가지. 그의 칼판장 시절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경래 : 호텔 들어가서 부주방장으로 일했던 적이 있어요. 호텔 상무가 와서 짬뽕 하나 해달라고 해서 만들었는데 맛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하하하. 그런데 부끄럽지 않았고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히려 더 오기가 생겼어요. 짬뽕은 간 맞추는 게 제일 포인트인데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주방장으로 가는 기초가 됐던 것 같아요.
주방의 총수, 칼판장이란 자리. 그 위세가 대단했을 텐데 짬뽕의 굴욕에도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그는 '싫은 소리 한 번 들으면 한 가지 더 배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여경래 셰프의 고백, 짬뽕 하나에 담긴 그의 고뇌와 오기는, 그가 얼마나 많은 꿈과 열정을 품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부끄러움 대신 생긴 오기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그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했으리라.
음악에서 화음이 아름답게 들리려면 그 앞에 불협화음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인생도 음악과 같을 게 아닐까? 화음 앞에 불협화음이 있기 때문에 인생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정점을 누리고 있는 여경래 셰프.<이야기를 담다>를 다시 보며 인생 선배님들의 지혜를 빌려 인생을 걷고 싶다고 말한다.
"인생의 정점을 찍은 분들이 많이 나오셨는데, 내리막길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우린 다 내려가야 하잖아요."
인생의 정점을 걷는 이가 내일을 준비하는 겸손한 자세는 그가 왜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는지를 조용히 말해준다. 정상에 선 이의 시선이 오히려 더 낮아진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높이가 아닐까.
여경래 셰프가 어느 날 쉼표를 즐길 때<이야기를 담다>를 본 후, 인생 선배들의 조언이 새로운 인생 요리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 그의 다음 레시피에는 어떤 깊은 통찰이 더해질까. 그의 마지막 고백, "이제 집에 갈 수 있다"에서 한 인간의 완성과 새로운 시작을 기대해 본다.
◇ 이야기를 담다, 그 후 - 여경래 셰프의 '불도장' 한 그릇 같은 이야기
<이야기를 담다>가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다른 인터뷰에서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을 담았기 때문이에요. 보통은 이야기만 나누고 끝나는데, 채소를 직접 채 썰어 장식을 만드는 과정까지 보여드릴 수 있어서 정말 재밌었고 색다른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제 오랜 요리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점도 인상 깊었어요. 흑백요리사 출연 이야기부터 셰프의 길을 이은 두 아들, 그리고 제자의 성장까지….그동안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한 번 더 되새길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방송을 통해 제 생각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한 철학, 그리고 중식이 가진 매력을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어서 참 기뻤습니다. 요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일이라기보다 정성을 담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마음이 시청자분들에게도 잘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를 담다>비하인드는 CEO인사이트를 통해 격주 단위로 공개됩니다.
<이야기를 담다>는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30분에 매일경제TV와 유튜브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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