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두려움, 홀로 가야 한다는 불안에 짓눌릴 때가 있어요. 그렇게 막막할 때 같은 여자로서 닮고 싶고, 언제든 질문할 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몰라요."
킴벌리 쿠퍼 자쿠아 세계여성포럼(IWF) 글로벌 회장(55)은 여성 리더들의 '연결'을 강조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IWF 한국지부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 지난주 방한한 그는 매일경제와 만나 "IWF가 여성 리더를 위한 '플랫폼'이 되겠다"며 "20여 년간 활동하며 만난 34개국 8500여 명의 회원 대다수도 내가 느꼈던 고립감에 힘겨워했음을 알고 있다.
우리가 그랬듯 다른 여성들도 더 이상 혼자라고 느끼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쿠퍼 회장은 17년간 경영 컨설팅 기업 포르투나 그룹(Fortuna Group)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커리어우먼이다.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산업, 교육, 금융서비스, 헬스케어, 제조업, 지속가능성, 관광, 과학기술 등 다양한 산업에서 리더십을 발휘했으며, 30년 넘게 독보적인 커리어를 구축해 왔다.
그는 '여자에겐 어렵다'는 축구, 수학, 그리고 사업까지 해냈지만 어느 날 불현듯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혼자라는 고립감, 어느 회의나 모임을 가도 남성들만 빼곡한 현실 속에서 간극을 느꼈던 것이다.
이달 출범한 IWF 한국지부는 세계 여성 리더와 한국 여성 리더 간 정서적 연결고리가 될 전망이다.
문화예술부터 제조, 금융 등 다양한 업계에서 활약 중인 여성들이 포진해 있다.
쿠퍼 회장은 "현재 한국의 고유한 문화는 미디어 산업은 물론 식품, 정보기술(IT) 등 다양한 산업에서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한국 여성들은 수많은 장애물을 넘고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어냈다.
그 경험과 태도를 세계에 공유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성의 리더십은 어떻게 다를까. 흔히들 여성 리더십을 '섬세함·부드러움·공감'과 같은 성격적 특징에만 연결 짓곤 한다.
하지만 쿠퍼 회장은 '높은 수익률, 낮은 리스크'와 같이 여성 리더십이 만들어내는 실제 성과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IWF에 속한 여성 임원들은 '여성 리더들의 당위성이 아닌 실적을 봐 달라'고 강조한다.
쿠퍼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직에서 여성 리더는 단순히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는 상징적 존재가 아니다"며 "수많은 연구를 통해 여성 임원이 많은 기업일수록 평균 수익률이 높고 위험 지표가 낮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남성들에게도 새로운 여성 리더는 기존의 파이 일부를 나눠야 할 불청객이 아니라 파이 자체를 함께 키워줄 동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MZ세대 여성 리더들을 언급하자 쿠퍼 회장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30세 미만 여성들을 위한 콘퍼런스와 리더십 프로그램에서 만난 청년들이 떠올라서다.
그는 "그들은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 '대체 왜?'라고 되묻는다"며 "정말 바라던 모습이다.
그런 태도야말로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열쇠"라고 말했다.
쿠퍼 회장 역시 한때 두려움 많은 젊은 여성 리더였다고 술회했다.
그는 "과거를 떠올리면 격려가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됐다"고 회고했다.
경영인으로서 첫발을 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는 여성이 리더 역할을 맡는 것을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넌 할 수 있어"라는 말 하나에 용기를 얻고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IWF 회원들은 스스로를 '여성을 위한 여성'이라고 부른다.
다음 여성 리더를 이끌어주고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겠다는 다짐이 깃든 말이다.
쿠퍼 회장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모든 분야에는 개척자 역할을 한 여성 리더들이 있었다.
그들이 첫 번째일 수는 있어도, 마지막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에 쿠퍼 회장은 다시금 '연결'을 강조했다.
여성들만의 연결을 넘어 남성, 그리고 모든 공동체와의 연결이었다.
그는 "나를 포함해 IWF 모두 이 자리에 오기까지 여성만의 힘으로 이뤄낸 건 아니다"며 "그 과정에는 많은 남성 멘토, 동료, 친구들의 도움과 지지가 있었다.
단지 여성만을 위한 변화가 아닌 세상 모두를 위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송현 기자 / 사진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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