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AI 기반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 가보니
시제품 제작 대신 초고가 컴퓨터로 실험
中企 “수억원 장비·SW 구매비용 아낄 수 있어”
대구에 위치한 산업용 밸브 중소기업 A사는 2년 전 캐비테이션(공동 현상) 저감장치 개발에 나섰다.
밸브 내부에 유속이 급격히 증가할 때 발생하는 캐비테이션 때문에 소음과 진동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관건은 시간과 비용이었다.
시제품을 만든 뒤 문제점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개선하는 데 반년 이상 소요되고, 비용도 1억원이나 들 것으로 예상됐다.
이 때 A사는 대구 성서산업단지에 위치한 ‘AI 기반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의 도움을 받았다.
A사는 센터의 AI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천 가지가 넘는 설계안을 가상으로 테스트하며 캐비테이션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저감 장치의 최적 형상을 찾아냈다.
총 사업비 258억원이 투입된 AI 기반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가 제조 중소기업 기술 혁신을 촉진하고 있다.
최근 방문한 센터에는 한 장 당 5000만원을 호가하는 엔비디아 H100 그래픽카드 수십 장이 활발하게 구동되고 있었다.
센터는 중소기업이 혼자서는 구축하기 힘든 최첨단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는 물론, 엔비디아 최신 그래픽카드 60여 장을 탑재한 초고성능 컴퓨팅 인프라스트럭처를 제공해 중소기업의 제품 개발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여준다.
이 사업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총괄하고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전담기관을 맡고 있는 ‘공정혁신 시뮬레이션 센터 구축·운영 사업’ 일환이다.
로봇 부품 보관용 적재랙을 개발하는 B사도 센터 지원을 받아 성공을 거둔 사례다.
B사는 3000kg 하중을 버틸 수 있는 성능과 20년간 쓸 수 있는 내구성을 고객사에 입증해야 했다.
B사는 AI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적 하중, 피로 수명, 20년 사용 누적 손상 같은 정량적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사에 제품의 구조적 안정성과 내구성을 증명해 판매계약을 체결하며 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개발 기간을 5개월에서 2개월로 단축했고, 개발 비용도 80%나 절감했다.
센터는 인프라 대여에 그치지 않고 아이디어 구상 단계의 기업을 위해 디자인과 설계, 시뮬레이션, 시제품 제작, 최종 성능검사까지 제품 개발 전 과정을 한 곳에서 해결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148개 중소기업이 지원을 받아 총 34억원의 매출 증대와 14억4000만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뒀다.
최근 센터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시뮬레이션, 설계, 제작에 본격적으로 접목하며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예컨대 과거에는 엔지니어가 설정한 조건으로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다면, 이제는 AI가 직접 최적의 조건을 제안하고 사람이 놓칠 수 있는 부분까지 찾아 보완하는 식이다.
센터에서 기업 지원사업을 수행하는 박재현 경북대 첨단정보통신융합산업기술원 인프라운영부장은 “시뮬레이션 지원을 통해 기존 기계·전기전자·자동차 부품 중소기업들을 로봇이나 도심항공교통(UAM) 같은 고부가가치 업종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사업의 핵심 목표”라고 설명했다.
대구 서정원 기자
매일경제·한국산업단지공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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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반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 연구원이 제품 시뮬레이션을 위해 3D 스캔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산업단지공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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