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4일, 경남 창원 진해마천일반산업단지의 한 선박용 부품 주물공장을 찾았다.

공장은 쇳소리로 가득했고 묵직한 4톤짜리 전기로에서는 고철과 주철이 녹아 붉은 쇳물이 쏟아져 나왔다.

열기는 멀리서도 느껴질 만큼 뜨거웠다.


동남아 출신 근로자들이 응집제 가루를 부어가며 쇳물을 꼬챙이로 휘저었다.

꼬챙이를 빼자 사방에 불티가 흩날렸고 마그네슘 등 불순물들이 검게 타오르며 끌려 나왔다.

정제된 쇳물이 형틀에 부어지고 굳은 후 깨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지난 4일 경남 창원 진해마천일반산업단지 내 한 주물공장에서 외국인 작업자들이 쇳물을 작은 레이들(쇳물을 담는 원통)로 옮기고 있다.

[사진=이윤식 기자]

뿌리산업 현장에선 위험하고 고된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힘든 일을 하는 비숙련 근로자들조차 최저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고, 2·3차 하청업체에서는 숙련도가 쌓여도 임금이 크게 오르지 않는다.

반면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의점이나 카페 아르바이트도 최저임금은 보장된다.

젊은 세대가 뿌리산업을 외면하는 이유다.


주물, 금형, 열처리 등으로 대표되는 뿌리산업은 자동차, 반도체, 조선, 기계 등 대한민국 핵심 산업의 기초다.

지금 이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채산성이 떨어지는 데다, 중국과 동남아 부품업체들과 가격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 산업에 ‘젊은 피’가 없다는 점이다.

청년층의 진입 기피로 기술 전수에 단절이 생기고, 그 자리를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우고 있다.

뿌리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주조업종 기능직 근로자 중 외국인 비율은 32.4%에 달했다.

기자가 찾은 공장 역시 직접 쇳물을 다루는 작업은 동남아 출신 젊은 외국인들이 주도하고 있었고, 40·50대 내국인은 숙련작업이나 제품 검수에 주로 투입되고 있었다.


이제는 뿌리산업 현장을 ‘일하고 싶은 일터’로 바꾸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물론, 실질적인 처우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당장 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기술 숙련도가 높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숙련기능인력(E-7-4)으로 전환해 체류 기간을 늘리는 조치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AI 기반 스마트공장을 도입해 생산 효율성과 작업 환경을 동시에 개선하는 것도 하나의 해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뿌리산업 업체들이 2·3차 하청 구조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수주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규모 인프라 투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뿌리산업의 붕괴는 한국 제조업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기업이 함께 나서야 한다.

정부는 뿌리산업을 위한 맞춤형 정책 지원을 강화하고, 대기업은 공급망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국내 협력업체와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뿌리산업을 지키는 것이 곧 대한민국 제조업의 미래를 지키는 길이다.

결국 해답은 사람에 있다.


이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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