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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학 영원무역 그룹 회장이 서울 중구 영원무역 명동 사옥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 이충우 기자] |
수출산업이 전무하던 1979년의 방글라데시. 공장을 지을 곳을 찾아 다카 데즈가온 공항에 들어선 성기학
영원무역그룹 회장은 그곳에서 절망을 봤다.
부족한 인프라스트럭처와 열악한 환경, 낙후한 교육, 굶주린 아이들. 무엇 하나 갖춰진 것 없는 방글라데시 상황은 그저 안타까운 탄식만 자아냈다.
당시에는 중미 온두라스와
서남아 스리랑카 같은 국가들도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어서, 성 회장은 투자처 선정을 놓고 숙고했다.
여러 국가가 경쟁적으로 각종 혜택을 제시했지만 결국 그가 선택한 곳은 방글라데시였다.
삐쩍 마른 아이들의 둥근 눈망울이 발목을 붙들었다.
성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방글라데시 정부가 절박하게 매달려 뿌리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의 성 회장은 그때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제는 방글라데시에 더 많은 기업이 투자하기를 호소한다.
방글라데시에 투자한 최초의 외국 기업인. 지난 45년간 공단을 운영하며 의류 산업 기반을 세운 섬유 수출산업의 선구자. 총 7만여 명을 직고용하고 20만여 명을 간접고용해 정부 다음으로 많은 직원의 생계를 책임져온 국민 기업. 성 회장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4월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명예시민으로 위촉되기까지 했다.
매일경제는 최근 그를 만나 지난 45년간의 방글라데시 투자 일대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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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학 영원무역 그룹 회장이 서울 중구 영원무역 명동 사옥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 이충우 기자] |
-방글라데시에 투자한 게 벌써 45년 전이다. 당시 방글라데시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1979년에 처음으로 방글라데시를 방문했고, 1980년 5월에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으니 방글라데시에 투자한 지 벌써 그렇게 됐다.
섬유산업에서 방글라데시에 투자한 외국 기업은
영원무역이 최초다.
사실 그때는 한국도 임금이 대단히 낮을 때였다.
혹자는 우리가 임금을 아끼려고 해외로 나간 것 아니냐고 하는데, 원가 측면에선 오히려 국내 하도급 생산보다 방글라데시에서 생산하는 게 더 비쌌다.
그럼에도 해외에 공장을 짓게 된 건 한국에 가해진 스웨덴항 수출쿼터 제한 때문이었다.
그걸 피해 수출하려면 해외에 공장을 차려야겠더라. 마침 방글라데시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투자를 요청했다.
태국과 스리랑카 같은 나라에서도 러브콜을 줬는데, 방글라데시가 가장 절박하게 매달렸다.
당시 방글라데시는 수출 외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최근에 명예시민권까지 받았는데 소감을 말해달라.
▶ 무척 영광이다.
방글라데시 정부 관계자들에게 “투자한 지 50년은 돼야 주는 줄 알고 5년을 더 기다리려 했는데, 45년 만에 줘서 놀랐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다른 것보다도 우리 직원들이 정말 좋아하더라. 회장이 늘 외국인이라 거리감이 있었는데, 이제 같은 나라 사람이 돼 더 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진출 초기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다.
▶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공장을 가동한 1년 뒤인 1981년에 지아우르 라만 대통령이 암살됐다.
이후 정치적 혼란기여서 그 시기를 힘겹게 지났다.
1985년에 수출가공공단(Export Processing Zone·EPZ)이 시작돼 그쪽으로 옮겼는데, 정부 관료들이 운영하는 공업단지는 여러 문제가 많지 않나. 특히 환경 관리가 잘 되지 않아서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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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차토그람 남쪽 20분 거리에 조성된 영원무역의 KEPZ. 총면적 2,492에이커(여의도 면적 3.5배) 규모의 땅은 과거 위 사진처럼 황무지였으나, 영원무역이 인공 호수를 만들고 나무를 심어 아래와 같은 녹지로 탈바꿈 시켰다. [영원무역 그룹] |
-그래서 KEPZ(Korea Export Processing Zone)를 만들게 된 건가.
▶ 그렇다.
우리가 직접 운영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마침 1995년도에 라만 전 대통령의 부인인 칼레다 지아 총리가 한국에 왔다.
그때만 해도 한국과 방글라데시는 교류가 많지 않아
영원무역 공단 조성을 두고 양국의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해에 정권이 바뀌어서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취임했다.
이거 안되려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 정부가 자유시장경제를 수호하겠다며
영원무역을 앞세워 홍보하고 특별법까지 제정했다.
그래서 1999년에야 KEPZ 건설을 시작하게 됐다.
-토지소유권 분쟁이 이어지지 않았나.
▶ 그 후부터 정부의 비협조가 이어졌다.
등기권리증을 주지 않고 계속 미루더니 이후 정권이 바뀌며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에서 소유권 정리가 지지부진해졌다.
땅에 나무는 심었는데 공장은 못 짓게 했다.
그러다 겨우 과도정부에서 운영 허가를 받아 2011년에야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는 개발을 시작한 게 15년이 채 안된다.
최종적으로 작년에 무함마드 유누스 과도정부 수반이 취임하고 지금에서야 등기 문제가 해결됐다.
사실 2주 안에 해결해줘야 하는 문제인데, 무려 25년이나 걸렸다.
-토지소유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으니 이제는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겠다.
▶ 단언할 수 있는 건 우리 공단의 근무 환경이 세계적으로도 탁월하다는 거다.
KEPZ는 세계 최초의 친환경 공단이다.
이미 25년 전에 후대를 위해 자연친화적인 공단을 만들겠다는 콘셉트를 잡았다.
사막 같은 황무지였는데 우수를 가둬 호수를 만들고 나무를 250만그루나 심어 아름다운 녹지로 탈바꿈시켰다.
내 고향이 경남 창녕인데, 거기 있는 우포늪 비슷하게 만들어졌다.
전력 수요도
태양광으로 전부 자체 생산해 감당한다.
현재 3만5000명 정도가 일하고 있는데, 섬유패션대학까지 설립해서 일자리를 10만개까지 늘리려고 한다.
쉽게 말해 인구 10만명 이상의 환경친화 도시를 건설 중이다.
-어느덧 51년간 기업 경영을 해왔는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 아직 명맥이 남아 있는 한국 섬유산업을 잘 추슬러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
과거 우리가 섬유산업을 너무 홀대해서 기반이 망가진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K패션과 섬유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힘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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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이 서울 중구 영원무역 명동 사옥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 이충우 기자] |
■ 성기학 회장은
△1947년 서울 출생 △1965년 서울사대부고 졸업 △1970년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1972~1973년 서울통상 근무 △1974년
영원무역 설립 △1984년
영원무역 대표이사·회장 △1992년 골드윈코리아(현 영원아웃도어) 설립 △2014~2020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 △2018~2020년 국제섬유생산자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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