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에 크록스 신고 지퍼백 씻어 쓰는 우리 할배”...손자 카터가 떠올린 인간 카터

“반바지 입고 크록스 신고 나오는 우리 할배. 지퍼백도 씻어 다시 쓰셨죠”
미국 제 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100)의 장례식이 지난 9일(현지시간) 엄수된 가운데 손자 제이슨 카터(49)의 추도사가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지미 카터의 손자 제이슨 카터. 연합뉴스
정치에 입문한 손자 제이슨 카터는 미국인 누구나가 ‘대통령 카터’를 넘어 ‘인간적인 카터’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할아버지와 기억을 되살려 냈다.


그는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파파(할배)’라고 불렀다”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조지아 주지사 관저에서 4년, 백악관에 4년을 사셨지만 나머지 92년은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집에서 보낸 소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운구되는 카터 전 대통령의 관.연합뉴스
그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맞이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손자 카터는 “직접 손으로 지은 집에서 할아버지는 70년대 스타일 짧은 반바지에 크록스를 신고 문을 열고 나왔다”고 말해 눈물 짓던 성당 안 추모객들을 웃게했다.


이어 “남부 수천 명 조부모님 집들이 그렇듯 벽에 낚시 트로피가 걸려있고, 냉장고에는 손주와 증손주들 사진이 가득 붙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순박한 그의 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또 다른 사례도 들었다.

그는 “싱크대 옆에 지퍼백을 (재사용 하기 위해 씻어) 널어놓는 작은 받침대가 있었다”며 “대공황 시대를 거친 파파의 절약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해 다시 한번 청중을 웃게했다.


지미 카터의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에서 펼쳐진 미 해군의 공중 경례 의식. AFP연합
해군으로 복무하던 시절 핵잠수함 분야에 몸담았을 만큼 엔지니어의 기질이 있었지만 신문물인 휴대전화는 잘 다루지 못했단 에피소드도 꺼내놨다.

그는 “(유선전화만 쓰던 할아버지가) 결국 어느날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하셨는데 전화를 거셨길래 받았더니 ‘너 누구야’하고 되물은 적이 있다”며 “‘저예요, 제이슨. 할아버지가 저한테 전화하셨잖아요’ 했더니 ‘난 안했어. 난 사진 찍고 있었어’라고 말했다”고 해 좌중을 다시 미소짓게 만들었다.


야구장을 찾은 지미 카터(왼쪽)과 손자 제이슨 카터. AP연합
카터는 대통령 재임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만나 주한미군 철수 문제로 논쟁을 벌였고 퇴임 이후에는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만나는 대북특사 활동을 해 우리와도 인연이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카터 전 대통령은 고향 교회에서 90세가 넘어서까지도 주일 교회학교 교사로 일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선 박정희 대통령과 회담 당시 동행했던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목사)이 워싱턴DC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워싱턴 대성당에서 75분 동안 진행된 장례식이 끝난 후 카터 전 대통령의 관은 다시 비행기로 그의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로 이송됐다.


추모식은 한번 더 카터 자신이 평생 다닌 마라나타 침례교회에서 가족들만을 위해 조촐하게 치뤄질 계획이다.


손자 카터는 이날 추모사에서 “우리 교회에서는 ‘깨어나는 순간부터 머리를 뉘는 순간까지 신의 선하심을 노래하겠다’는 노래를 부른다”며 “할아버지는 분명 그런 사람이었고 그의 삶은 신의 선하심에 대한 증거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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