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왼쪽 둘째)가 신호등 연립정부에 참여하는 사민당, 자민당, 녹색당 대표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650억유로(약 88조2000억원) 규모의 3차 인플레이션 부담 경감 패키지를 발표하고 있다.

[AFP = 연합뉴스]

유럽 각국이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가격으로 인한 가계·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십조 원 규모 지원책을 속속 마련하고 있다.

주요 7개국(G7)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 가격상한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데 맞서 러시아가 유럽행 가스관을 걸어잠그는 등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을 앞두고 유럽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모습이다.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독일 '신호등 연립정부'(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녹색당)는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줄이기 위해 총 650억유로(약 88조2000억원) 규모 인플레이션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많은 시민이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누구도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지원 규모까지 포함하면 현재까지 독일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인플레이션 대책에 쏟아부은 금액만 총 950억유로에 달한다.

BBC에 따르면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투입된 예산 3000억유로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1년 전보다 10배가량 높아진 천연가스 가격으로 인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7.9%나 상승하는 등 서민 경제를 잠식하는 물가 불안이 심해지자 추가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독일 정부는 연금 수령자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시 현금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또 주거지원금 지급 대상을 현재 64만명에서 200만명으로 늘리고 이들에게 난방지원금도 지급하기로 했다.

아울러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 부문의 약 9000개 기업에 대해 총 17억유로(약 2조3000억원) 상당 세금을 감면해주기로 결정했다.


필요 재원의 일부는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초과 이윤을 낸 에너지 기업들에 '횡재세'를 부과해 조달할 계획이다.

이날 숄츠 총리는 연립정부가 에너지 기업들의 초과 이익에 대해 과세하는 방안에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스웨덴과 핀란드, 체코 정부도 에너지 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스웨덴과 핀란드 정부는 이날 자국의 에너지 회사에 대해 각각 230억유로(약 31조원), 100억유로(약 13조원)의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선다고 밝혔다.

유럽의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전력 거래에 필요한 추가 담보금까지 오르면서 일부 기업들이 파산할 위기에 내몰리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미카엘 담베리 스웨덴 재무장관은 "지원이 없을 경우 일부 전력 회사는 '기술적 파산'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체코 정부는 겨울이 다가오기 전 학교와 병원, 기타 공공기관에 공급할 에너지를 조달하는 기관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4개국 정부가 같은 날 에너지 위기 대응책을 내놓은 데는 러시아의 가스 공급 차단 통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일 G7 재무장관들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 도입 방침을 발표하자 러시아 국영 에너지 회사 가스프롬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노르트스트림-1' 송유관 운영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2일 최고점(8월 26일) 대비 약 40% 떨어져 있던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도 다시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위기가 정치적 불안을 낳고 있다는 점도 각국의 대응을 부채질했다.

지난 2일 체코 정부는 물가 불안과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야당이 제기한 불신임 투표에 직면해야 했다.

투표는 부결됐지만 다음날인 3일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는 치솟는 에너지 가격에 분노한 시민 7만명이 유럽연합(EU) 탈퇴, 러시아와의 가스 도입 계약을 촉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NYT는 "에너지 위기와 치솟는 인플레이션이 정치적 불안을 촉발할 수 있다는 유럽 지도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한편 EU의 에너지 장관들은 오는 9일 브뤼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치솟는 에너지 가격을 억제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로이터통신은 긴급회의 관련 문서 초안을 인용해 EU의 에너지 장관들이 수입 가스 가격상한제를 비롯해 EU의 전력 가격 결정 시스템에서 일시적으로 가스 발전소를 제외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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