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낱이 잘 듣고, 잘 토의해서, 잘 풀어보자’라는 플래카드에 적힌 문구가 무색했다, 경기도 7개 공공기관 이전 문제를 놓고 벌인 난상토론이 ‘풀어낸 것’ 없이 이견 차 만 확인한 채 끝났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찬반 대표 등 8명이 지난 22일 경기도청 상황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벌였다. 소셜방송 Live경기(Live.gg.go.kr)를 통해 생중계된 이날 난상토론회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균형발전이란 대승적 프레임 때문이든, 이재명 지사의 ‘전투력’ 탓이든 간에 논점의 무게감에 비해 싱겁기만 한 논쟁에 그쳤단 지적이 나온다. ‘요식행위’에 그쳤다는 아쉬움도 토론장 안팎에서 들린다.

100분 가까이 진행된 토론 중 전체적인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질의답변을 콕 집어 발췌해봤다.

"(경기도 3차) 공공기관 이전 확정에 대한 전제를 깔고, (이 지사가) 저희들한테 설득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민 대표(반대측) 자격으로 참석한 이오수 전(前) 광교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의 푸념 섞인 말이다.

이 지사는 "느낌이 아니고 사실이다"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이전 확정) 사실을 깔고 하는데 저희들이 참여해서 지금 앞에 계신 북부 지방 의원님이나 오셔서 남북 간 정쟁을 막겠다는 게 참 안타까운 부분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원인을 제공한 지사님께서 책임을 지셔야 될 것 같다"라고 직언했다.

이 지사는 이에 "책임지는 건 당연하다. 권한의 양은 책임의 양과 일치하기 때문에 제가 한 모든 행정의 결과는 다 제 책임이다.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결정하기 전에 토론회 하지 그랬냐. 사실 그건 형식 논리라서. 결정을 안 했는데 토론을 왜 하나?"라고 반문했다.

마치, 격의 없는 토론회라기보다는 일방의 ‘설명회’가 맞다는 한 참석자의 발언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전반적인 토론의 얼개는 공론화 과정 무시, 법적 절차상 하자, 예산 조달 문제, 이전 대상기관 소속 노동자의 기본권 등이었다. 여기에 경기북·동부 표심을 염두에 둔 정치적 포석 아니냐는 민감한 사안도 표출됐다.

논거가 미흡한 반대 측의 명분이나, 밀어붙이기식 이 지사의 논리는 모처럼 열린 공론의 장을 유의미한 시간으로 만드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는 일각의 목소리다.

토론의 핵심은 ‘정반합(正反合)’이라 할 수 있다. 새롭게 제시된 정(正, These)이, 이와 대비되는 반(反, Antithese)에 봉착하게 되고, 더 낳은 합(合, Synthese)을 도출해내는 원리다. 이러한 과정이 선순환 되면서 발전을 이끌어낸다는 개념이다.

토론영상을 거듭 돌려보면, 이 지사와 대면한 참석자들이 현직 도지사이자 차기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의 ‘아우라’에 눌린 측면도 느껴진다.

이에 반해, 이 지사는 ‘사회자’라는 말이 좌중에서 나올 정도로 토론을 압도하는 ‘순발력’과 예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일관했다.

그렇다보니 이번 토론 과정을 지켜보면서 정반합에 도달한다는 상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어찌됐든, 경기도 공공기관 이전 난상토론회가 이 지사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무탈하게’ 마무리됐다.

행정과 정치는 각각의 영역이 있지만, 전혀 무관할 수는 없다. 이 지사가 토론 중간 수차례 언급한 ‘표를 의식했다면 이전 추진을 안했다’는 의미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행정 행위나 정치 행위나 민선 시대 선량(選良)들 중 ‘票(표)플리즘’에 무심한 이들이 얼마나 될까. 유권자들의 입맛에 맞추려면 자신의 철학과 소신은 접어두는 게 현실 정치의 속성이다.

이 지사가 공공연하게 강조해온 ‘공정한 세상’, ‘불균형 해소’ 실현을 위한 행보에는 지지를 보낸다. 다만, 공공기관 이전반대 측 입장에 서 있는 도민들을 ‘잡아놓은 물고기’라고 착각하면 오산이다.

공공기관 이전 문제뿐만 아니라 일련의 정책 수립과 수행에 있어 ‘정반합’의 기본이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튼 이번 토론회 영상을 닫으면서, ‘김빠진 사이다’를 마신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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