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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지르며 나비처럼 나는 돌` 그리는 서양화가 김정권
기사입력 2020-11-2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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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194×97. charcoal on canvas 2020
[요요 미술기행-61] 서양화가 김정권은 인구 7만의 소도시 경북 김천에서만 40여 년째 살며 미술학원을 운영하면서 작업하고 있다.

작가의 이름, 작품의 특징은 고사하고 김정권이라는 존재 자체를 사람들은 잘 모른다.

모든 것은 존재 알리기에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그가 다닌 고등학교는 가톨릭 계열 학교다.

예체능에 대한 후원이 비교적 많았다.

그는 미술부 리더였다.

대학은 경남 마산으로 진학했다.

졸업 후 바닷가에 작업실도 가져봤으나 다시 김천으로 돌아왔다.


2000년 3월 독일행을 감행했다.

그 이유가 뜻밖이었다.

유럽의 무속에 관심이 있어서다.

유럽사에서 무속의 현상, 특히 마녀가 중심이 되는 샤머니즘에 대해 알고자 했다.

우리의 무교(巫敎)와 무엇이 다른지가 궁금했다.

우리 무교에는 영혼이 자주 언급된다.

해원(解怨)굿, 진혼(鎭魂)굿 등이 그것이다.

지금은 무속(巫俗)이라고 부르는 의례는 원래 무교(巫敎)였으나 일제시대 굿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결집하는 걸 막기 위해 무속(巫俗)으로 낮춰 불렀다.


Being 우리 동네 아파트. 97×130 charcoal on canvas 2017
'무'(巫)는 하늘과 땅과 인간이 어울린다는 뜻이다.

그 어울림을 인위적으로 통제당한 것이다.

무속이든 무교든 '단지 육신만 사라지고 영혼은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이 종교적 제의의 핵심적 가치다.


어릴 적부터 작가의 어머니는 무속인을 찾아 경제적 문제를 포함해 집안 대소사에 대한 조언을 구하곤 했다.

집안 친지도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이 있었다.

영남 지역은 대체로 신병(神病)을 앓아 내림굿을 받고 신이 실려 직접 신어를 말하는 강신무(降神巫)다.

호남 지역은 무업(巫業)을 배우거나 대물림하는 세습무(世襲巫)다.

집안 환경에서 무속을 접하며 인간 의지와 무관한 죽음, 미리 인지할 수 없는 사후세계, 비가시적인 무속의 시공, 내재돼 있을 것이라는 영속적 존재에 대해 막연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전자 무당(electronic shaman)'으로 불리던 백남준(1932~2006)은 굿을 미지의 신에게 말을 거는 행위 예술, 무속을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소통(communication)으로 이해했다.

백남준 역시 어린 시절 굿을 주관하는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김정권은 독일 유학 직전에 대학 시절을 포함해 작업한 모든 작품이 작업실에 불이 나 소실되었다.

작품을 찍어둔 사진도 사라졌다.

대학 입학을 위한 포트폴리오도 제출할 수 없어 독일 현지 어학연수 중 작업(주로 드로잉)해 제출해야 했다.

독일 생활은 2년여 만에 중단되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체계적이지 않다 보니 계획이나 주변 여러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일시 귀국 후 독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젊은 시절을 몽땅 불태웠듯 그는 홀로 몸부림쳤던 소중한 독일 작센안할트주 할레(Halle)에서의 2년도 역시 사라졌다.


김정권은 돌에서 인간과의 유사성을 봤다.

부딪치면서 깨지고 다시 단단해지는 과정이 삶의 여정과 닮았다.

자연의 풍화 작용을 받는다 해서 자연 자체인 돌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

작품 속 돌들은 공중 부양(浮揚)한다.

타인의 간섭, 침해, 어떤 (권력의) 작용을 받지 않으려다 보니 대상인 돌들이 날아다니듯 뜬다.


고대 시기 사람들은 돌 제단 위에 온갖 제물을 올리고 하늘과 자연을 향해 공포로부터의 자유와 풍요, 생명의 보존을 기원했다.

현대판 타임캡슐인 암각화에는 당대 삶의 모습과 사람들 생각을 새겨넣었다.


질량을 가진 모든 사물은 중력의 법칙이 작용한다.

돌이든 사람이든 어떤 존재든 물리적 중력을 무시할 수 없다.

삼발이(三脚架)가 없어 홀로 설 수 없는 계란처럼 돌 위의 또 다른 돌이 위태위태하다.

일상생활의 흔들림과 고통을 나타냈다.

먼저 생각을 정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대상에서 스친 모티프로 작업을 하고 난 뒤 생각을 정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Being 먼나라 여행 116.8×72.7 charcoal on canvas 2018
돌 작업 이전의 작품들은 해골이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호감을 가지거나 또는 기피한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법으로 해골을 대상으로 택했다.

해골은 인간이라는 객체의 외형적인 물질적 변화일 뿐 아니라 내재돼 있는 무형의 영속적 존재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

그러니 해골은 상징이다.

사물로서 인간을 순간적 외형으로 포착하는 게 아니라 대상의 본질적인 모습을 파헤치려는 시도다.


영국 미술을 현대미술의 주류로 편입시킨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선두 주자 데이미언 허스트는 작업을 위해 모델이며 오브제가 되는 해골을 골동품시장에서 구했지만 김정권은 구할 수 없었다.

자신의 전신을 X레이 찍어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색채로 승부하지 않는다.

정신의 사유를 통한 형태와 구도에 집착한다.

그의 작품들은 목탄을 사용한 흑과 백으로만 나타난다.

검은색으로 보이는 목탄에는 모든 색이 다 들어 있다.

삼원색을 섞으면 검은색이다.

유채색을 넣으면 인위적으로 꾸미는 듯해 싫었다.

더구나 그는 오일이나 아크릴 물감에서 나는 특유의 화학물질 냄새로 인해 심한 두통 현상도 있다.

작가로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다.


작업 초창기에 물감 대신 먹을 사용했으나 빛의 반사는 막을 수 없었다.

진한 목탄 작업을 한다.

목탄 층을 올리는 작업은 손가락을 사용한다.

지두(指頭)를 밀착해 목탄이 안착하도록 한다.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해골도 물질이다.

내면의 본질은 비구상, 추상으로 표현하는 게 솔직하다.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드는 작업은 이렇듯 쳇바퀴 돌듯이 순환한다.


현대미술은 조형성에 치중하든가, 메시지에 기울어지는 등 조류와 사조,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해 객관성을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

김정권의 작품 세계는 이러한 사이의 균형점을 유지하게 한다.

그의 작품을 마주하면 왠지 사유에 이르게 된다.

그의 작품은 소위 '작가주의' 작품에 해당되나 메시지나 이념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작가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기에 상업주의 미술의 탁류에도 휩쓸리지 않았다.

미술관급 작가로서 가능성도 보인다.

미술학원을 겸한 그의 작업실은 여건상 150호 이상 작업이 어려운 게 아쉽다.


그의 최근 작들은 2차원 평면에 부양하는 듯, 공중에 뜬 돌을 가로질러 전통 수묵화처럼 산하가 펼쳐진다.

이대관소(以大觀小)의 시점으로 들여다본 산수의 진경이다.

돌은 그가 한때 몰입했던 무교의 '무'(巫)처럼, 신과 자연 그사이에 놓인 인간과 사회의 존재 자체 또는 상징으로 자리한다.


서양화가 김정권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날은 어두워졌고 비가 내린다.

김천구미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 노래가 흐른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윤도현밴드의 나비) 노랫말이 계속 귓전을 맴돈다.

화가 김정권은 어느덧 50대 중반, 재능을 거부할 수 없어 택한 내림굿 받은 것과도 같은 화업(畵業)을 하면서 좀 더 자유롭게 나비처럼 날아 자신이 소리 지르는 돌이 되어 세상을 일깨웠으면 한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루카 19. 40)
[심정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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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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