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M M-PRINT GFW CITYLIFE LUXMEN 매경이코노미 MBN골드 MBN 매일경제
로그인|회원가입 |시청자 게시판
종목검색
  • 종목검색
  • 통합검색

헤드라인

광고
프로그램 바로가기
프로그램 바로가기 닫기
가나다순 카테고리순
> 뉴스 > 기사
기사목록|||글자크기 
[허연의 책과 지성] 세상은 울기에는 너무 우스꽝스럽고, 웃기엔 너무 추악한 곳
기사입력 2020-10-31 00:11
  • 기사
  • 나도 한마디
공유하기 
영국 유학을 다녀온 나쓰메 소세키가 도쿄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던 1900년대 초반 어느 날. 한 학생이 'I love you'를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번역하자 소세키는 '달이 아름답네요' 정도로 번역하는 게 좋겠다고 수정해준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이었으니 '사랑한다'는 직접적인 말이 일본인들 정서에 안 맞던 모양.
어쨌든 그 이후 '달이 아름답네요'라는 말은 하나의 일상적인 숙어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은유할 때 지금도 종종 등장한다.


소세키는 일본 근현대문학의 아버지다.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마음' 등에서 일본 사소설의 전통은 시작됐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됐던 2000년. 일본 아사히신문이 지난 1000년간 일본 최고 문인이 누구인지를 묻는 설문을 했다.

1위는 나쓰메 소세키였다.

노벨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는 물론 대단한 인기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미시마 유키오, 다자이 오사무도 소세키를 이기지 못했다.

그는 일본인에게 개화된 언어를 가져다준 사람이다.

한문체가 대세였던 일본 문학에 언문일치 일본어를 적용시켰고, 수많은 영어 명사를 일본어로 옮겨 서구 문물이 일본인들 머릿속에서 개념화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가 영어에서 가져와 최초로 규정한 단어들은 지금 한국에서도 종종 사용한다.

신진대사, 반사, 무의식, 가치, 전력, 낭만 같은 말들이다.


이런 일화도 있다.

일본인이 흔히 쓰는 1000엔짜리 지폐의 등장인물은 원래 이토 히로부미였다.

당연히 일본 침략에 의해 피해를 본 당사국들이 반발했고 일본 정부는 교체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쓸 만한 인물이 없었다.

고대 인물은 이미 다른 화페에 들어가 있었고, 근현대 인물 중에는 군국주의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때 선택된 인물이 나쓰메 소세키였다.

그는 군국주의가 싹트고 몸집을 키우던 바로 그 시절 글을 쓰고 강단에 섰지만 군국주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된 건 소세키에게 신념 같은 게 있어서라기보다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었다.


소세키는 사회적인 사람이라기보다 개인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타고난 회의주의자였고 소심했으며 고독했다.


최근 출간된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다 펴냄)을 보니 그의 성향이 확연히 드러나는 구절이 흔히 발견된다.

그는 마흔 살 무렵 이런 편지를 쓴다.


"좋아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듭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 풀과 나무가 아름다워 보입니다.

특히 봄볕은 더할 나위 없이 좋군요. 저는 그런 것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
소세키는 신경쇠약과 심한 위궤양으로 죽기 전 "세상은 울기에는 너무 우스꽝스럽고 웃기에는 너무 추악한 곳"이라는 말을 남긴다.


죽기 직전 남긴 또 다른 편지는 평생 고독했던 한 남자의 절명시처럼 읽힌다.


"가을이건만. 읽다 남은 이 책을 마저 읽을 수 있을지."
[허연 문화선임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나무가 #야스

기사목록|||글자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