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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칸의 세례를 받은 건축가 김광현(上)
기사입력 2020-11-0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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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광현 /사진=이승은
[효효아키텍트-59] 한국의 성당 건축물 180여 개를 설계한 알빈 슈미트 신부(1904~1978)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루돌프 슈바르츠(1897~1961)를 소개한 건축교육자이며 건축가인 김광현의 칼럼을 접했다.

슈바르츠는 이상적 교회 건축 평면중 두 개를 '빛의 성작(chalice of light)' '어두운 성작(dark chalice)'이라고 말했다.

김광현의 소개로 명확해졌다.


김광현은 지난 9월 김정철 건축문화상을 받았다.

10년 전에 제정된 상의 첫 번째 수상자다.

김광현은 올해 건축의 날 특별 강연에서 '대승건축'에 대해 말했다.

"나는 이 도시에서 살다가 죽고 싶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상업적 건축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건축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유치원 건물을 예로 든다.

건축의 공동성 (共同性·commonness) 이론을 설명할 때의 예도 유치원이다.

건축은 사람의 근본적인 바람을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며, 기능적으로 해석한 오브제에만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다.


"무엇이 유치원 설계의 시작일까? 이것 이상이 없다고 생각되는 소중한 것, 그게 유치원 시설의 '시작'이다.

유치원 공간 구조나 디자인이 유치원생에 맞게 지어졌는가"라고 말한다.


김광현 건축가가 설계한 `율촌재단청소년수련원`
10월 21일에는 자신이 설계한 울산 '율촌재단 청소년 수련원'(2020) 준공식에 참석했다.

허가 면적이 300㎡, 연면적이 87평이다.

최초 용지의 용도 자문부터 설계 제안, 시공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준공식에는 울산광역시교육청, 울산유아교육진흥원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우리나라의 유치원 교육 시설과 환경은 열악하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을 가진 유치원이 많지 않다.

부모들이 아침 일찍 맡긴 아이들은 하루 종일 실내에만 머무는 게 현실이다.

경사지에 동선을 크게 만들어 위아래 건물을 다각도로 활용하게 했고, 리셉션 바닥과 옥상 데크에는 나무를 깔았다.

체험할 수 있는 공간 면적은 300평 수준이다.

재단 사무국 관계자들에게는 적극적인 프로그램 개발을 주문했다.


1950년대 근대건축의 기능적이고 기계적인 접근 방식,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결정론적인 사고방식이 문제가 되었다.

근대건축의 새로운 방향이 다양하게 모색될 즈음 루이스 칸(Louis I Kahn·1901~1974)이 위치한다.

칸의 언어와 건축은 날것인 감정과 시적인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대표적 작품인 일명 '타이거 시티'라고 불리는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이 그 예다.


루이스 칸이 설계한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사진=김광현
김광현은 2011년 현지 답사를 다녀왔다.

건물 내부에 들어서 벽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에 압도되는 순간, "아, 루이스 칸…"이라고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김광현은 "엄격한 추상 '건축' 이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는 침묵, 부분과 전체의 결합성, 공간에 우뚝 선 건축의 강건함, 형태와 형태를 구획하는 벽들이 만드는 준엄한 공간"이라고 표현한다.

칸은 유리와 강철이 현대 건축의 핵심적 재료로 등장했음에도 벽돌 등 전통 재료를 활용했다.

칸은 (의사당의 평면도를 보며) "평면은 방의 사회다.

방은 서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광현은 '하나의 개체가 전체 속에 매몰되지 않고 독자성을 갖는다'고 해석한다.


칸의 건축에는 어린 시절 제정러시아에 속한 에스토니아의 성, 여행 중 만난 스코틀랜드의 성, 고대의 피라미드나 파르테논, 고대 로마의 판테온에서 온다.

굉장한 무게, 중력, 부피에서 오는 장엄함이 있다.

이는 '침묵과 빛의 건축'으로 특징지어진다.


이의 연장선에서 김광현은 모더니즘 건축의 출발인 바우하우스를 비판한다.

이 시대에 바우하우스를 재론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예술과 기술의 통합'이 바우하우스 철학이었지만 기술, 즉 기능에 치우쳤고 단위 요소로만 가르쳤다는 비판이다.

산업 디자인에 기여한 측면은 인정한다.


김광현의 스승 고야마 히사오(1937~)는 칸의 제자다.

김광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칸을 알아야 한다.

김광현을 알면 칸을 알 수 있다.

정인국(1916∼1975) 편저 '현대건축론'을 읽으면서 칸을 알았다.

다른 동기들이 르코르뷔지에를 말할 때 김광현은 칸을 말했다.

칸이 가르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유학을 꿈꾸었으나 편도 비행기 삯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3학년(1974년) 가을, 칸이 세상을 떠났다.

유학 갈 목적이 사라졌다.

모교 대학원에 진학해 배우면서 후배들에게 설계 과목을 가르쳤다.

일본 문부성 장학금을 받아 도쿄대로 유학을 떠났다.

칸의 제자인 고야마가 있었다.

고야마는 1960년 도쿄대 공학부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1965년 에콜 데 보자르의 전통을 이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칸에게 사사 후 필라델피아 칸 스튜디오에서 일한다.

1971년 이후 도쿄대 공학부 교수를 지낸다.

고야마는 1950년대 도쿄대에서 신학문으로 등장한 계량적인 '건축계획학 연구실'에서 공부했으나 오히려 반대의 길을 간 셈이다.


연구생 시절, 청취가 잘 되지 않는데도 고야마는 일과 시작 전 '건축 형태와 빛'에 대해 가르치겠다고 했다.

한국에서 대학원 졸업 때까지 김광현이 접한 건축 슬라이드는 딱 석장이었다.

5일씩 매일 2시간, 슬라이드 1200장을 봤다.

형태와 빛에 대해 저절로 알 수 있었다.

빛을 알았으니 그림자를 이해했다.

고야마는 김광현을 가르친 뒤 공식적인 하루 일과를 시작하곤 했다.


아침은 교수 부인이 싸준 샌드위치를 같이 먹었다.

칸은 학생들에게 말했다.

"나에게 가르치는 일은 수도사가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이 되면 수도사가 성당에 가듯이 나도 강의실로 간다.

" 김광현은 향후 42년간 대학교수를 하면서 고야마와 그의 스승 칸을 통해 '무릇, 선생은 저래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박사 과정 면접에서 마키 후미히코(1979~1989년 재직)가 질문을 던졌다.

"루이스 칸을 연구하려면 펜실베이니아대에 가야 되지 않겠느냐?" 김광현이 답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셨으니 사도 바오로에게 배우려고 합니다.

" 칸 제자인 고야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네. 제가 사도 바오로입니다"라고 답했다.

그 자리에서 합격했다.


1990년대 초 고야마 일행이 방한했다.

일행들과 같이 해가 질 무렵에 경북 영주 부석사를 찾았다.

고야마는 일행들과 떨어져 컴컴해져서야 돌아왔다.

고야마는 요사채 앞에 스님이 벗어 놓은 털신과 고무 신발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고야마는 "한국의 스님은 이 요사채에서 기거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일본 불교 스님은 대처승이다.

넥타이를 매고 출근한 후 넥타이를 매고 퇴근한다.

종교에 상관없이 수도가 무엇인지, 수도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 있었다.

당시 고야마는 눈이 많은 홋카이도 지역에 수녀원을 설계 중이었다.

이때 수녀들이 그 지역 눈 내리는 주요 방향을 계산해 신발이 젖지 않도록 해달라는 말에 적지 않게 낙담하던 중 부석사의 이런 보습을 보았다.


댓돌에 놓인 고무 신발이 부석사의 모든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이날 김광현은 숙소에서 불현듯 뿌옇기만 했던 루이스 칸이 말한 건축이 무엇인지, 건축이 이래야지 하는 자각이 왔다.

김광현은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을 설명하기 위해 칸이 타계하기 6개월 전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했던 강연을 소개한다.


"한 인간이 지니는 가장 커다란 가치란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줄 아는 데 있습니다.

(중략)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에게 속한 게 아닙니다.

이것은 누구나 쓸 수 있는 보물입니다.

"
루이스 칸은 "그 보물은 모든 사람에게 속한 보편적 공동성의 한 부분"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공동성은 칸에서 출발한다.

김광현은 "한 개인에게만 속하진 않으나 모든 이에게 속해 있는 인간의 본성"으로 해석하였다.


"한 예술가의 가장 훌륭한 작품은 그가 공동성에 근접하고 있는 인간 속에 있는 영원성(에 대한 그의) 감각이다.

영원성(의) 감각은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the yet-not-said)'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the yet-not-made)'에 대해 응답하는 사람들 안에 있다.

"
김광현이 가르치고 연구한 것은 건축의 공동성에 기초한 '건축 의장'과 건축 이론이다.

공동성과 공동체는 다르다.

공동체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있다.

비슷한 생각을 지닌 이들이 모여서 하나의 공간을 만들고, 여기 들어온 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공동성은 좀 더 원초적이다.

누구나 생각하는, 하나의 방향으로 가려는 그런 의지이다.

김광현은 자신의 저서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에서 말한다.


절은 울타리를 형성한 공동체다.

스님이 있고, 신자들이 있다.

'절'이라는 건축물에 관계된 사람들이 어울리면 그게 공동체가 된다.

공동성은 이와 다르다.

스님이나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산중 절에 가게 되면 심신이 달래지리라 느낀다.

그걸 건축으로 풀어내면 '공동성을 담은 건축물'이 된다.

스님과 신자만 들어가게끔 만든 절은 '공동체만을 담은 건축물'이 된다.


김광현은 건축 설계가 산업으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인 건축기본법,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등을 비롯해 법 제정, 제도, 정책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기본법에 '공동의 노력으로'가 공동성이라고 말한다.


[프리랜서 효효]
※참고자료 : 영화 '루이 칸의 타이거 시티(Louis Kahn's Tiger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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