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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과 글씨 이야기] 연말, 깊은 사유를 공유하는 모임을 위해
기사입력 2019-12-0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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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인상의 `아집도`.
아집(雅集), 또는 아회(雅會)는 인간의 사회활동 가운데 가장 고상한 행위일 것이다.

영미권에서는 'Elegance Gathering'이라고 지칭하는 이 모임이 동양에서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중국 동진(東晉) 시대 왕희지가 난정(蘭亭)으로 지인들을 초청해 열었던 아집이 매우 유명하고, 단원 김홍도가 그림으로 남긴 서울 중인 출신 시인들의 시인 결사(結社)는 그 시대의 중요한 문화사적 사건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 '우아한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치적·경제적·예술적 입장이 같아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입장 공유하기는 동지적 유대감을 형성하고, 그 일체감은 상상으로라도 형성하고 싶어하기도 했다.

그래서 중국 북송 시대의 어떤 문인들은 실제로 모이지 않았거나 모일 수 없던 인물들의 아집을 상상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은 물론 그 그림을 두고 시문을 지어 기리기까지 했다.


아집은 사람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멤버들의 공통 관심사, 그것을 보여주는 기물들을 함께 늘어놓고 즐기는 행사가 되기도 했다.

청동기, 자기를 비롯해 옥이나 금속을 가공한 공예품과 악기, 심지어 매화, 수선화 등 식물까지 아집에 등장했으며, 그것은 소유주의 품성과 미감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들에 관한 품평도 시문에 못지않은 평론의 제재가 됐다.


조선 영조는 사대부에게 검약을 요구하고 스스로도 잘 지킨 임금이었으나, 동아시아 전체에 퍼진 아집 문화에서 기물을 전시하고 감상하는 행사는 이미 모임 문화의 중심이 됐기에, 18세기 조선에서도 호사스러움을 뽐내는 아집이 자주 열렸다.

이달에 소개하는 그림은 아집 장면을 묘사하되, 여느 아회와 다른 모임을 담고 있다.

사진은 이인상(1710~1760)이 30대 시절, 함께 어울리던 젊은 사대부의 모임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종이에 먹으로 스케치하듯 선을 그어 형상을 그리고 아주 제한적으로 엷은 색을 사용했지만 전체적으로 희미할 뿐만 아니라, 전래돼 오는 과정에서 상하기도 하여 그림이 또렷하지 않아 한참 들여다봐야 하는 작품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다.


그림 속 인물들은 동아시아 아집의 전통대로 관심 있는 기물을 구경하고 그것에 얽힌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홀로 떨어져 나와 앉아 명상에 들거나, 자신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기도 한다.

검, 청동 향로, 붓, 책, 벼루부터 파초와 매화, 대나무까지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여기 모인 인물의 관심사와 그들의 지향과 욕망을 잘 보여주는 소재다.

욕망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세속적 욕심과는 다른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스스로의 맑음을 위해 바치는 공양'이라 하여 때때로 '청공(淸供)'이라 미화하기도 한다.

호사(豪奢)로도 보일 수 있으나, 저들의 모임에서 오간 이야기는 대개가 고전(古典)과 그 해석, 옛사람의 일화, 기물의 유래와 기능 등에서 시국(時局)에 관한 토론까지 스펙트럼이 넓고 진지했다.

그러므로 이들의 아집은 스스로를 고양하려는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그림을 남긴 이인상과 그의 친구들은 한겨울이면, 달포씩 친구의 집에 모여 함께 먹고 자면서 독서와 강론을 벌였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어린 세대가 함께하도록 했다.

1744년의 겨울, 오찬(吳瓚)의 집에서 한 달 동안 이어진 아집을 겸한 강독회에는 훗날 정조와 순조 시대 노론의 거두로 성장하는 오재순(吳載純)이 코흘리개로 참여하기도 했다.


12월에는 모임이 많다.

한 해 동안 살아오느라 수고한 자아들을 서로 위로하고, 바뀐 해에도 행운과 건강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누는 자리일 것이다.

위로와 덕담은 잠깐이다.

이어지는 시간 내내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위안의 상투적 달콤함 너머에 있을, 우리의 자존을 높이고 정신을 고양할 모임은 어떨까. 사유를 공유할 이벤트로서의 아집이라면, 그것은 과거의 사대부에게만 허락되는 것일 리 없다.


[유승민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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