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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등쌀에…안방 놔두고 해외에 스마트공장
기사입력 2018-06-1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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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한 중견 제조업체 A사는 공장 업무 프로세스 단순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머신러닝을 활용한 차세대 전사적자원관리(ERP) 솔루션을 국내 공장에 도입할 계획이었다.

스마트공장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회사 계획을 알아차린 노동조합에서 '회사 업무가 자동화하면 재무회계 파트 근무자가 구조조정될 수 있다'며 거세게 항의하자, 결국 신개념 ERP를 해외 공장에 우선 적용하기로 했다.

또 마케팅 전문업체 B사는 보다 빠르고 정밀한 설문조사 결과 취합·분석을 위해 유사한 프로그램을 회사 시스템에 설치하려다 정부가 연일 '일자리 창출'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보고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와 관련해 국내 한 대기업 관계자는 "비즈니스 혁신을 하려면 블록체인·인공지능(AI)·머신러닝 같은 신기술을 접목한 ERP와 고객관계관리(CRM)가 우선 이뤄질 필요가 있다"면서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일자리 줄이는 기업=나쁜 기업'이란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혁신을 주저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민간 기업 주도의 혁신이 정작 정부가 설정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책 틀과 충돌하면서 혁신성장 자체가 지체될 우려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5~7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사파이어 나우 콘퍼런스에서 주최 측인 SAP가 공개한 올해 국가별 매출 예상치만 봐도 알 수 있다.

SAP에 따르면 올해 한국 기업이 SAP가 개발한 차세대 ERP·CRM 솔루션을 구입하는 데 쓰는 자금은 100만달러 안팎에 불과하다.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은 물론이고 브라질 포르투갈 남아프리카공화국보다도 작은 규모다. 미국이 가장 많은 13억3531만달러를 쏟아부을 전망이고, 일본도 5억달러가량을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혁신을 위한 기본 인프라스트럭처 구축 단계에서부터 뒤처지는 모양새다.


SAP에 따르면 AI·머신러닝을 접목한 차세대 기업관리솔루션을 도입한 회사들은 평균 매출이 35% 증가했고 유지 비용은 60% 줄었으며, 근로자 안전성은 10% 개선됐다.

이와 관련해 하소 플래트너 SAP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은 "새로운 SAP 솔루션을 도입하게 되면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코드를 50%가량 없앨 수 있다"면서 "기업 업무 프로세스가 단순해져 시스템은 안정되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글로벌 제약사 머크(Merck)는 10여 년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도매업체와 약국에 판매한 약의 2~3%를 재구매해 왔다.

재고를 다시 사주는 데 들어간 비용이 연간 60억달러 수준에 달한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수요·공급망 관리를 통해 비용의 상당 부분을 아낄 수 있게 됐다.

또 세계적인 재보험사 스위스리(Swiss Re)는 55일 걸리던 금융보고서 취합·분석을 5일 안에 해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밖에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업체 아디다스는 '매장형 공장(Store Factory)'이라는 신개념 프로세스를 도입해 개인 고객 맞춤형 운동화 제작 시 소요됐던 1년 반이란 시간을 3주로 단축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블록체인·머신러닝·AI 기술 도입에 따른 자동화에 대한 우려가 유독 한국에서만 과하게 나타난다는 분석도 있다.

시장조사업체 PwC가 전 세계 29개국 20만개 직업을 조사한 결과 2030년에는 현존하는 직업의 30%가 자동화로 인해 사라진다.

하지만 한국은 소멸되는 직업 비중이 평균치보다 훨씬 낮은 22%에 불과해 자동화로 인한 타격이 가장 작은 국가로 분류됐다.

미국은 38%, 영국은 30%에 달했다.

혁신성장에 따른 부담이 가장 작은 나라가 혁신에 가장 소극적인 셈이다.


오정근 건국대학교 금융IT학과 교수는 "정부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내부 시스템을 구축하고 꼭 필요한 사람을 채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며 "일자리 창출을 강제하면 혁신성장이라는 목표와는 더욱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랜도 =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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